【 앵커멘트 】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을 실어 나른 피란 열차가 67년 만에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이 상상도 못할 만큼 달라졌지만, 피란민들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상호 기자가 동행 취재했습니다.
【 기자 】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는 피란행렬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응애응애"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합니다.
화물용 기차에 겹겹이 올라탄 피란민들,
아버지는 자식이 떨어질까 기차에 몸을 묶고, 어머니는 꽁꽁 언 얼굴을 녹여줍니다.
67년이 지나 다시 부산행 피란 열차에 몸을 실은 78세 남정부 할아버지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 인터뷰 : 남정부 / 피란민 (당시 10살)
- "이런 기회가 올 거라고 상상도 못했죠. 굉장히 감개무량하죠."
마침내 부산에 도착한 피란열차, 먼저 온 가족들과 극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6·25 당시 1,023일 동안 피란수도였던 부산에는 임시수도정부청사를 비롯한 피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 인터뷰 : 박정애 / 6·25 전사자 유족
- "그때는 얼마나 서글펐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피란민들은 삶의 터전이던 감천문화마을과 이산가족 상봉 장소였던 40계단을 바라보며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봅니다.
▶ 인터뷰 : 김재운 / 피란민 (당시 7살)
- "겨울에 입을 옷도 없지, 먹을 것이 없지 큰 고생을 한 거예요. (기억이) 생생하죠."
국민 10명 중 7명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상황.
남북 주민통합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이번 피란열차 체험이 많은 의미를 전해주는 이유입니다.
MBN뉴스 박상호입니다. [hachi@mbn.co.kr]
영상취재 : 정운호·유용규 기자
영상편집 : 이소영
영상출처 : 유튜브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을 실어 나른 피란 열차가 67년 만에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이 상상도 못할 만큼 달라졌지만, 피란민들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상호 기자가 동행 취재했습니다.
【 기자 】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는 피란행렬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응애응애"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무작정 남쪽으로 향합니다.
화물용 기차에 겹겹이 올라탄 피란민들,
아버지는 자식이 떨어질까 기차에 몸을 묶고, 어머니는 꽁꽁 언 얼굴을 녹여줍니다.
67년이 지나 다시 부산행 피란 열차에 몸을 실은 78세 남정부 할아버지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 인터뷰 : 남정부 / 피란민 (당시 10살)
- "이런 기회가 올 거라고 상상도 못했죠. 굉장히 감개무량하죠."
마침내 부산에 도착한 피란열차, 먼저 온 가족들과 극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6·25 당시 1,023일 동안 피란수도였던 부산에는 임시수도정부청사를 비롯한 피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 인터뷰 : 박정애 / 6·25 전사자 유족
- "그때는 얼마나 서글펐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피란민들은 삶의 터전이던 감천문화마을과 이산가족 상봉 장소였던 40계단을 바라보며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봅니다.
▶ 인터뷰 : 김재운 / 피란민 (당시 7살)
- "겨울에 입을 옷도 없지, 먹을 것이 없지 큰 고생을 한 거예요. (기억이) 생생하죠."
국민 10명 중 7명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상황.
남북 주민통합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이번 피란열차 체험이 많은 의미를 전해주는 이유입니다.
MBN뉴스 박상호입니다. [hachi@mbn.co.kr]
영상취재 : 정운호·유용규 기자
영상편집 : 이소영
영상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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