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세연 씨(28·여)는 얼마 전 10년을 쓰던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연락처를 비롯 등록된 메신저 친구만 해도 600명 가까이다. 수많은 전화번호 가운데 김씨가 연락하는 사람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김씨는 "어렸을 때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동아리와 각종 모임에 참석하면서 인맥을 만들기 위해 애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피상적인 인간관계에 허무감이 든다"면서 "실제 가족과 자주 연락하고 보는 사람을 제외하고 불필요한 관계 정리를 위해 오랫동안 사용하던 SNS까지 탈퇴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형의 SNS를 사용하고 대외 활동이나 사회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20~30대 사이에서 최근 인간관계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불필요한 인맥을 정리하고 가깝고 중요한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인맥 거지'를 자처하기도 한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성인남녀 2526명을 대상으로 '인간관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피로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가'는 물음에 8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46%는 최근 '인간관계를 정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인맥 다이어트(주변 관계를 정리하는 것)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이들 대부분은 형식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회의감 때문에 '군중 속의 고독'을 경험하면서 심적인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해 한 여론 조사 기간 20~30대 4191명을 상대로 설문을 한 결과 전체 42%가 인맥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씨 역시 "(인맥 다이어트를 한 이후로) 웬만한 연락처는 잘 저장하지 않는다"면서 "굳이 인연을 이어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과감하게 거부했더니 마음은 되려 편해졌다"고 설명했다.
반면 10대들 사이에서는 '인맥(혹은 SNS) 열풍'이 불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는 SNS상의 온라인 친구 수나 좋아요 갯수 등이 곧 본인의 인기 척도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고등학생 김 모양(17)은 하루중 스마트폰을 안갖고 있는 시간이 극히 드물다.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으로 몰래 보는가 하면 점심시간, 등하교 시간에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실시간으로 달리는 SNS 댓글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과의 메신저 연락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김양의 최대 관심사는 본인의 SNS 계정의 친구들과 그들이 보내는 좋아요 갯수다. 같은 반 친구들과도 SNS 상에서 더 많은 온라인 친구를 보유하기 위해 은근한 경쟁도 벌인다.
김모양 같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조건을 내걸은 '공약' 게시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좋아요 1만개 돌파하면 삭발을 하겠다'던가 '댓글 수가 1000개를 넘으면 곤충을 먹겠다'는 비현실적인 공약들이 대부분이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공약을 내세워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 내고 온라인 상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인 셈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를 통해 아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실제적인 관계가 아니라서 오히려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면서 "양적 인맥을 추구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관계의 깊이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은 20·30대에서는 주변 관계를 정리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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