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맞이한 누군가는 흐드러진 벚꽃을 떠올리지만, 다른 누군가는 3년 전 여객선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그날을 먼저 기억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마음속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생존학생과 그들의 가족,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느꼈던 극도의 긴장과 불안 증세를 여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15일 안산온마음센터(안산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 한은진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세월호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세월호 피해가족 상당수는심신의 안정을 되찾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고비는 4월마다 찾아옵니다.
일종의 '기념일 반응'인데, 불의의 사고로 가족이나 친지 등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잃었을 경우 그 일이 발생한 날짜나 연관된 기념일이돌아올 때마다 더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증상입니다.
실제 일부 세월호 생존학생과 유족은 4월만 되면 평소보다 긴장상태가 심해져 무엇을 하더라도 편히 쉴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뿐더러 신체적인 '떨림' 반응까지 경험한다고 한 전문의는 전했습니다.
아들과 딸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족들 곁을 떠났던 4월의 포근했던 날씨, 여기저기서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모습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이 됩니다.
예전만 해도 일상이던 버스에 타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잘 가지 못합니다. 불안 증세가 심해져 약물을 투입해야만 안정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특히 지난달 세월호가 1천72일 만에 처참한 모습을 수면 위로 드러내면서 이들이 심리적으로 받는 자극은 더해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소식이 연일 보도되면서 관련 사진과 영상을 지속해서 접한 일부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은 3년 전에 느낀 똑같은 정신적인 고통을 다시 겪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한은진 전문의는 "이 시기가 지나면 심리를 자극하는 요소들도 없어져 대부분 안정을 찾아가겠지만, 매해 있을 4월과 세월호 소식 보도는 통제할 방법이 없다"라며 "이들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에만 빠지지 않고 현재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 돕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센터나 병원의 도움 외에 주변에서 이들의 심리회복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
한 전문의는 일부러 당사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거나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되게 대우하는 행동 등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대신 이들이 어떤 부분을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세상에 가졌던 믿음과 신뢰가 한순간 깨진 경험"이라며 "센터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생존학생과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와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으려면 지역사회와 주민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담을 하다 보면 꼭 직접적으로 말을 해서가 아니라, 노란 리본을 가방에 부착한 학생들이라든지, 세월호 팔찌를 찬 시민의 모습만 봐도 위안을 얻고 지지받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21조는 세월호 피해자가 의료기관의 검사·치료를 받은 경우 그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 지원을 오는 2020년 3월 28일까지 하도록 한정합니다.
일반적으로 재난 상황을 경험한 트라우마 환자 가운데 과반수는 1년이 지나면 후유증을 회복하지만, 10명 중 2∼3명은 수년이 지나도 후유증 회복이 안 돼 불면, 불안, 집중 곤란, 우울 등 다양한 증상을 겪습니다.
10년 이상 마음의 상처를 안고 가는 경우도 관찰됩니다.
한 전문의는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미수습자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사고 시점부터 이어져 3년 동안 동일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라면서 "5년이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는 학계 보고를 바탕으로 지원 기한이 정해진 것 같지만, 추후 필요한 의료 서비스에 대해선 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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