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행정법원이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수명기간 10년 연장에 대해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국내 원전 운영 전반에도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현재 국내 4대 원자력발전소(월성·고리·한울·한빛)에서 운영 중인 총 25기 원전 가운데 월성 1~4호기와 고리 1호기만 30년 수명으로 설계됐고 나머지는 대부분 40년 수명으로 설계·운영되고 있다.
여기서 정해진 수명을 다한 원전에 대해 10년간 추가 가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치가 바로 수명 연장이다. 1978년 4월 국내 최초 원전으로 등장한 고리 1호기는 지난 2007년 30년의 수명을 다한 뒤 10년간 연장됐고 올해 6월이면 영구 폐쇄된다. 국내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월성 1호기는 지난 2012년 가동을 중단한 뒤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의해 다시 2022년까지 운영하도록 결정됐다가 이번에 법원 판결로 뒤집어질 운명에 처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에 대한 좀더 면밀한 평가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원전 인근 주민의 의견 수렴 절차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이 미진할 경우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안전성 평가 때부터 원안위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국내 원전은 월성 1~4호기를 제외하면 모두 경수로다. 핵분열 연쇄반응에서 발생한 열을 이용해 물을 끓이고 그 물에서 발생한 증기로 터빈과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얻는 방식이다. 특히 경수로는 가동을 중단한 채 연료 전체를 한꺼번에 교체해야 한다.
반면 월성 1호기와 같은 중수로는 캐나다에서 수입된 캔두형으로 압력관 안에 천연우라늄을 가공해 만든 핵연료와 중수를 집어넣어 핵분열을 일으킨 뒤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다. 경수로와 다른 점은 원전 가동 중에도 수시로 연료를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에서는 월성 2호기에 적용된 안전 기술이 1호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캔두형 원전의 경우 사고 발생 시 방사능 물질의 원자로 건물 밖 누출을 줄여주는 최신 기술 기준(R7)을 적용해 안전성을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월성 1호기는 이 기준의 적용이나 설비시설 정비가 누락된 채 수명 연장이 결정됐다. 특히 월성 1호기는 2호기와 달리 연료 교체 시 원전을 폐쇄하기 위한 수문(水門)이나 격리 밸브가 없어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보완과 재평가가 이뤄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월성 2호기 다음으로 오는 2023년 수명 연장 결정을 앞두게 될 고리 2호기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부산시 기장군 주민들은 이번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취소 결정 판결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박태현 장안읍발전위원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2023년 수명이 다 되는 고리 2호기는 물론이고 8년 내 설계수명이 끝나는 고리 3·4호기도 수명 연장이 취소되기를 바란다"며 "기장군 인근에 총 20기의 원전이 있어 이곳이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일부 주민들이 고리 1호기 수명 연장 당시 1600억원 정도 발전기금을 받은 사례를 들면서 고리 2호기도 수명연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어 주민들끼리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전력 수급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데 위험한 원전을 자꾸 만들 게 아니라 수력발전 등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면 될 것"이라며 "최근 독일 등 선진국들은 원전을 폐쇄하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 수명 연장을 위한 절차상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이번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원자력안전법령이 요구한 첫 원전 허가와 수명 연장 당시 허가 사항을 비교하는 서류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환경단체 등은 원안위가 월성 1호기 연장 결정 당시 인근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해 원자력안전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가동 중이 원전에 대해 규제기관이 얼마나 적법한 절차를 밟아나갔는지를 지적하고 싶다"며 "이번 판결은 비전문가인 시민들의 주장도 절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며 이들 의견을 무시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안전성 평가를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원안위가 폐쇄성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안위는 수명 연장을 결정할 때 원자력안전기술원 소속 연구원 등 최고 기술자들의 검증을 내세우고 있지만 원전 자체가 워낙 전문화된 기술이어서 자기만의 틀 속에 갇힐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김승평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에너지 문제는 단순히 전문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사안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이자 국민의 문제"라며 "시민 공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동민 기자 / 서진우 기자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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