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모친 강태영 여사 별세
11일 별세한 고(故) 아단(雅丹) 강태영 여사는 한화그룹 김종희 창업주의 부인이자 김승연 회장의 어머니로서 한화그룹의 기틀을 닦는데 평생 헌신해온 조력자였습니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고인은 유교적 성품을 지닌 현모양처 스타일로 김 창업주를 묵묵히 내조했고 사안에 따라서는 강단 있는 생활인이기도 했습니다.
1927년 평택 태생으로 수원여고 졸업 후 양가 어른 소개로 1946년 김 창업주와 결혼한 강 여사는 1960~70년대 한화그룹 성장기에 외국 유력인사들과의 교류과정에서는 민간 외교관 역할도 자처했다고 합니다.
당시 외빈들이 가회동 자택을 자주 찾았는데 한국 전통가정의 정성스러운 식사대접이 미국 외교가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고인은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김 창업주가 고향인 천안에 북일고를 세울 때도 의견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온양온천을 다녀오는 길에 미래인재 양성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는 후일담이 전해집니다.
남편이 학교 부지 문제로 고민할 때 공장 부지로 사둔 천안시 신부동 땅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천안북일고 탄생의 산파역을 한 셈입니다.
1981년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에는 제대로 된 생일잔치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김승연 회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2003년 어머니가 희수(喜壽)를 맞았을 때 잔치를 해드리려 했는데 '내 생일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꺾지 못했다"는 일화를 밝힌 적도 있습니다.
김 회장에게 강 여사는 삶의 스승이자 존경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창업주가 일찍 별세하고 김 회장이 그룹 경영을 승계하자 젊은 최고경영자(CEO)에게 일각에선 불안감이 있었지만, 강 여사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김 회장을 믿고 지원했습니다.
김 회장에게 어린 나이에 회사 일을 맡긴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사업능력과 추진력은 아버지보다 뛰어난 것 같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창업주와 함께 성공회 신자였던 강 여사는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가 추진하는 사회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또 해마다 서울 북촌 마을회관 노인정에 떡을 돌렸다. 소식을 듣고 김 회장이 나중에 쌀을 기증한 일화도 가회동 일대에서 유명합니다.
강 여사는 문인들과 시조시집을 발간하고 문학동인을 만들어 문단활동을 하는 등 시조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특히 지난 2005년 아호를 따서 만든 재단법인 아단문고를 통해 한국 고서적과 근현대 문학자료들을 수집해 학계에 연구자료로 제공해왔습니다.
이인직의 '혈의 누', 박목월ㆍ조지훈ㆍ박두진의 '청록집', 나운규의 '아리랑', 문예지 '소년'과 '창조', 주시경의 '조선어문법' 등 희귀 근현대 문학자료 등 귀중한 문학자료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단문고는 현재 국보 3점, 보물 28점 등 총 8만9천150점의 고문헌, 근현대 희귀 단행본, 잡지 등을 보유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11일 별세한 고(故) 아단(雅丹) 강태영 여사는 한화그룹 김종희 창업주의 부인이자 김승연 회장의 어머니로서 한화그룹의 기틀을 닦는데 평생 헌신해온 조력자였습니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고인은 유교적 성품을 지닌 현모양처 스타일로 김 창업주를 묵묵히 내조했고 사안에 따라서는 강단 있는 생활인이기도 했습니다.
1927년 평택 태생으로 수원여고 졸업 후 양가 어른 소개로 1946년 김 창업주와 결혼한 강 여사는 1960~70년대 한화그룹 성장기에 외국 유력인사들과의 교류과정에서는 민간 외교관 역할도 자처했다고 합니다.
당시 외빈들이 가회동 자택을 자주 찾았는데 한국 전통가정의 정성스러운 식사대접이 미국 외교가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고인은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김 창업주가 고향인 천안에 북일고를 세울 때도 의견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온양온천을 다녀오는 길에 미래인재 양성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는 후일담이 전해집니다.
남편이 학교 부지 문제로 고민할 때 공장 부지로 사둔 천안시 신부동 땅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천안북일고 탄생의 산파역을 한 셈입니다.
1981년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에는 제대로 된 생일잔치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김승연 회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2003년 어머니가 희수(喜壽)를 맞았을 때 잔치를 해드리려 했는데 '내 생일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꺾지 못했다"는 일화를 밝힌 적도 있습니다.
김 회장에게 강 여사는 삶의 스승이자 존경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창업주가 일찍 별세하고 김 회장이 그룹 경영을 승계하자 젊은 최고경영자(CEO)에게 일각에선 불안감이 있었지만, 강 여사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김 회장을 믿고 지원했습니다.
김 회장에게 어린 나이에 회사 일을 맡긴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사업능력과 추진력은 아버지보다 뛰어난 것 같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창업주와 함께 성공회 신자였던 강 여사는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가 추진하는 사회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또 해마다 서울 북촌 마을회관 노인정에 떡을 돌렸다. 소식을 듣고 김 회장이 나중에 쌀을 기증한 일화도 가회동 일대에서 유명합니다.
강 여사는 문인들과 시조시집을 발간하고 문학동인을 만들어 문단활동을 하는 등 시조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특히 지난 2005년 아호를 따서 만든 재단법인 아단문고를 통해 한국 고서적과 근현대 문학자료들을 수집해 학계에 연구자료로 제공해왔습니다.
이인직의 '혈의 누', 박목월ㆍ조지훈ㆍ박두진의 '청록집', 나운규의 '아리랑', 문예지 '소년'과 '창조', 주시경의 '조선어문법' 등 희귀 근현대 문학자료 등 귀중한 문학자료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단문고는 현재 국보 3점, 보물 28점 등 총 8만9천150점의 고문헌, 근현대 희귀 단행본, 잡지 등을 보유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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