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교단 '혼란'…"교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
지방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 K 씨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 시행을 앞두고 고민이 많습니다.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판결 난 이후 신문의 '사례로 본 김영란법' 같은 내용을 자세히 읽어봐도 감이 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 내용을 두고는 언론 보도 내용과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이 엇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동료 교사들과 얘기해보니 다들 너무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돼 혼란스럽다고 하더라고요. 언론 보도를 자세히 들여다봐도 헷갈리기만 하고…. 그래서 아무리 작은 내용의 선물이나 마음의 표시라고 해도 무조건 안 받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시범 케이스'로 걸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커피 기프티콘도 받으면 안돼…교사들 "학부모에게 휴대전화 비공개하자"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공·사립을 막론하고 K 교사처럼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교원들이 대다수입니다. 일명 교단에서 '촌지'라는 것이 사라진 지 오래됐어도 교사가 여전히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는 분위기가 견디기 어렵다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아직 법이 시행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가정할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생각해 적법 여부를 따지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례로, 일부 언론은 학부모가 자녀의 작년 담임교사에게 10만 원짜리 물건을 선물할 경우 직무 관련성이 없어서 괜찮다고 소개했지만, 권익위는 "작년 담임교사의 경우도 언제나 가액기준 이하의 선물이 허용된다고 할 수 없으며 성적이나 수행평가 등과 관련성이 있다면 학부모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5천 원짜리 커피 한잔으로 교환할 수 있는 카카오톡 기프티콘을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경우도 과태료 처분 대상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학급 또는 교과목 담임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성적, 수행평가 등과 관련해 선물을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으며 사교와 의례 등의 목적을 벗어나는 경우에 해당해 금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방의 한 공립초등학교 교사는 "해당 기사를 본 뒤 학년 초에 아예 담임 휴대전화 번호를 학부모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속이 편하겠다고 말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학부모가 상담을 위해 담임교사를 찾았을 때 커피전문점에서 4천500원짜리 커피를 한 잔 사다 줄 경우에도 교사는 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담임교사와 학부모의 접촉은 일반적으로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데다, 자녀의 성적 등과 직결돼 '부정청탁'이 성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교탁에 올려놓는 음료수·과자도 일단 거절하겠다"
제자들이 가끔 감사와 정의 표시로 교탁 위에 갖다 놓는 과자나 음료수를 받아도 되는 건지 고민된다는 교사들도 많습니다.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에서는 아이들이 주는 작은 선물이라도 부정청탁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한 고교 교사는 "아이들이 선생님 고생한다며 과자나 음료수를 갖다 줄 때가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보도된 내용을 봐도 잘 모르겠고, 일단 정리된 지침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관련 상황을 설명해준 뒤 무조건 거절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한 교사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제자가 쿠키를 사 와서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선생님도 드시라고 몇 개 갖고 오면 거절해야 하나. 이제는 어른에게 먼저 음식을 권하는 예의도 가르치기 힘든 분위기가 될 것 같다"며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에 분개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영란법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이 부분은 향후 추가적인 해석과 논의가 더 필요한 실정입니다.
사회상규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하는 법률 용어입니다.
담임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 등 일반적으로 '부정청탁' 관계로 판단되더라도 작은 선물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사교나 의례의 행위로 분류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해설자료에서 "복잡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사회상규상 허용되는 모든 상황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다"면서 "(사회상규 여부는) 청탁의 동기·목적·내용, 공직자 등의 직무수행 공정성, 청탁의 수단이나 방법 등 내용과 형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교총 "교육부가 구체적인 교사 행동지침 마련해야"
교육 현장에서 이처럼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부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때 명확한 행동수칙을 만들어 안내하라고 요구할 방침입니다.
또한, 교총은 교사들을 상대로 한 자체 안내자료는 제작하지 않기로 했다. 제작된 자료가 권익위나 교육부의 안내와 다를 경우 현장에서 혼란이 커지고, 법적 책임 소재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김영란법 후속조치와 관련해 전국의 회원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8월 교육부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때 전달할 예정"이라면서 "법 시행 이전에 공·사립을 포괄해 교육계 전반에 적용되는 행동수칙과 매뉴얼을 교육부가 제작·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육부의 계획과는 별개로 서울시교육청은 일부 시·도 교육청들은 자체 안내자료 제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서울교육청은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와 주요 내용, 예상되는 위반 사례 등을 다룬 교사·공무원 연수자료 제작에 착수하는 한편, 교육청에 부정청탁 금지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지정해 상담·신고·조사 등 필요한 조처를 전담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지방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 K 씨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 시행을 앞두고 고민이 많습니다.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판결 난 이후 신문의 '사례로 본 김영란법' 같은 내용을 자세히 읽어봐도 감이 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 내용을 두고는 언론 보도 내용과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이 엇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동료 교사들과 얘기해보니 다들 너무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돼 혼란스럽다고 하더라고요. 언론 보도를 자세히 들여다봐도 헷갈리기만 하고…. 그래서 아무리 작은 내용의 선물이나 마음의 표시라고 해도 무조건 안 받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시범 케이스'로 걸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커피 기프티콘도 받으면 안돼…교사들 "학부모에게 휴대전화 비공개하자"
일선 학교현장에서는 공·사립을 막론하고 K 교사처럼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교원들이 대다수입니다. 일명 교단에서 '촌지'라는 것이 사라진 지 오래됐어도 교사가 여전히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는 분위기가 견디기 어렵다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아직 법이 시행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가정할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생각해 적법 여부를 따지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례로, 일부 언론은 학부모가 자녀의 작년 담임교사에게 10만 원짜리 물건을 선물할 경우 직무 관련성이 없어서 괜찮다고 소개했지만, 권익위는 "작년 담임교사의 경우도 언제나 가액기준 이하의 선물이 허용된다고 할 수 없으며 성적이나 수행평가 등과 관련성이 있다면 학부모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5천 원짜리 커피 한잔으로 교환할 수 있는 카카오톡 기프티콘을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경우도 과태료 처분 대상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학급 또는 교과목 담임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성적, 수행평가 등과 관련해 선물을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으며 사교와 의례 등의 목적을 벗어나는 경우에 해당해 금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방의 한 공립초등학교 교사는 "해당 기사를 본 뒤 학년 초에 아예 담임 휴대전화 번호를 학부모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속이 편하겠다고 말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학부모가 상담을 위해 담임교사를 찾았을 때 커피전문점에서 4천500원짜리 커피를 한 잔 사다 줄 경우에도 교사는 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담임교사와 학부모의 접촉은 일반적으로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데다, 자녀의 성적 등과 직결돼 '부정청탁'이 성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교탁에 올려놓는 음료수·과자도 일단 거절하겠다"
제자들이 가끔 감사와 정의 표시로 교탁 위에 갖다 놓는 과자나 음료수를 받아도 되는 건지 고민된다는 교사들도 많습니다.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에서는 아이들이 주는 작은 선물이라도 부정청탁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한 고교 교사는 "아이들이 선생님 고생한다며 과자나 음료수를 갖다 줄 때가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보도된 내용을 봐도 잘 모르겠고, 일단 정리된 지침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관련 상황을 설명해준 뒤 무조건 거절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한 교사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제자가 쿠키를 사 와서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선생님도 드시라고 몇 개 갖고 오면 거절해야 하나. 이제는 어른에게 먼저 음식을 권하는 예의도 가르치기 힘든 분위기가 될 것 같다"며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에 분개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영란법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이 부분은 향후 추가적인 해석과 논의가 더 필요한 실정입니다.
사회상규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하는 법률 용어입니다.
담임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 등 일반적으로 '부정청탁' 관계로 판단되더라도 작은 선물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사교나 의례의 행위로 분류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해설자료에서 "복잡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사회상규상 허용되는 모든 상황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다"면서 "(사회상규 여부는) 청탁의 동기·목적·내용, 공직자 등의 직무수행 공정성, 청탁의 수단이나 방법 등 내용과 형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교총 "교육부가 구체적인 교사 행동지침 마련해야"
교육 현장에서 이처럼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부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때 명확한 행동수칙을 만들어 안내하라고 요구할 방침입니다.
또한, 교총은 교사들을 상대로 한 자체 안내자료는 제작하지 않기로 했다. 제작된 자료가 권익위나 교육부의 안내와 다를 경우 현장에서 혼란이 커지고, 법적 책임 소재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김영란법 후속조치와 관련해 전국의 회원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8월 교육부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때 전달할 예정"이라면서 "법 시행 이전에 공·사립을 포괄해 교육계 전반에 적용되는 행동수칙과 매뉴얼을 교육부가 제작·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육부의 계획과는 별개로 서울시교육청은 일부 시·도 교육청들은 자체 안내자료 제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서울교육청은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와 주요 내용, 예상되는 위반 사례 등을 다룬 교사·공무원 연수자료 제작에 착수하는 한편, 교육청에 부정청탁 금지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지정해 상담·신고·조사 등 필요한 조처를 전담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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