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1일 발표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안의 핵심은 수사 개시 요건으로 국회 교섭단체의 수사의뢰를 포함한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감사원·국세청·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과 변호사법 위반·조세범처벌법 위반 사범 등으로 수사 대상공직자와 대상 범죄를 크게 넓히고, 공수처 직원 비리를 검찰이 수사하게 해 서로 견제가 가능하도록 만든 것도 눈에 띈다.
공수처 설치안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전·현직 고위 법조인들의 구속 사태 탓에 힘을 얻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57·사법연수원 17기)의 법조비리 혐의 구속, 뇌물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49·21기) 사태 등이 결정적 계기다. 특히 정치권은 검찰과 경쟁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검찰의 힘을 빼자는 데 동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 공수처, 야권 대선 공약 단골 손님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와 그의 가족들의 불법 행위를 전담해 수사한다. 공수처 설치는 야권의 단골 대선 공약인데, 기존 논의된 안은 이날 나온 법안보다 수사 대상과 대상 범죄군에서 폭이 좁았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3·12기)는 “공직자 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며 대통령 친인척과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판·검사, 국회의원 등을 수사 대상으로 포함했다.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정치자금법 위반·공직선거법 위반·부동산 투기·탈세·병역비리 등 10대 부패 및 비위 행위를 대상 범죄군에 넣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앞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같은 내용으로 공수처 신설을 약속했다. 당선 후에는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여권은 공수처 설치를 공개적으로 추진한 적이 없다. 야권의 제안에 주로 반대하다가 논의가 무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만 2010년 이재오 전 의원이 국민권익위원장 재임 시절 “고위 공직자 비리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독자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 ‘정치 수사’ ‘옥상옥’ 논란 먼저 해소 필요
법조계에서는 더민주의 안대로라면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회 교섭단체가 의뢰하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 정파를 표적 수사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는 일종의 행정 작용인데 입법부가 수사를 지시할 수 있도록 안을 짰다”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벗어나는 것이고, 특정 교섭단체가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에 반대되는 인사에 대해 수사하도록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옥상옥’이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옥상옥이란 이미 있는 것에 쓸데없이 같은 것을 더한다는 개념이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내부 감찰과 수사 기능에 의문이 있어서 공수처를 설치한다고 하면서 공수처 관련 비리는 검찰에게 수사하라고 하면 그 또한 모순”이라며 “공수처가 결국에는 검찰과 중복된 기능을 가진 수사기관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검찰과의 불필요한 충돌 내지 갈등만 유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공직 비리는 대부분 민간 부패에서 파생되거나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수사 대상과 대상 범죄군이 제한돼 있는 공수처가 유기적인 감찰·수사 활동을 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다. 정웅석 서경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 18일 금태섭 더민주 의원(49·24기)이 주최한 ‘검찰 개혁 방향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공직 비리는 상당 부분 민간 부문의 부패와 연계된다”며 “이를 무 자르듯이 잘라 공수처와 검찰이 나눠 수사를 하게 되면 수사권의 이원화가 초래될 뿐만 아니라 수사의 역동성을 훼손시켜 부패 범죄자들이 빠져 나갈 기회만 줄 수 있다”고 밝혔다.
◆ “현행 특별감찰관·특검 활용 대안될 수 있어”
법조계 일각에서는 현행 특별감찰관과 특별검사(특검)를 확대 운영하면 공수처 설치안이 가진 문제점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본다. 우선 특별감찰 대상을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인척, 수석비서관 이상의 공무원에서 검사장급 고위 검찰 간부로 확대하면 독립적 지위의 기관이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 특히 감찰 과정에서 고위직 검찰 간부의 범죄 혐의가 발견되면 검찰을 거치지 않고 국회에 직접 특검 발의를 요구하자는 의견도 검토해 볼 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고검장은 “특별감찰관이 국회에 특검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면 검사 비위를 수사하면서 불거질 수 있는 ‘제식구 감싸기’ 논란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고위직 검사에 대한 감찰 기능을 대통령 직속인 특별감찰관실에 부여하면 관리·감독 권한에 대한 논란 없이 제3자인 특검에 수사를 맡길 수 있기 때문에 공정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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