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식당에서 소주 한 잔만 마셔도 3만원이 훌쩍 넘는 게 현실입니다. 식사 접대비 ‘3만원’ 이라는 금액 상한선을 정하는 것은 현실적인 물가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입법입니다. 김영란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소상공인들의 생존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법안 개정을 촉구하는 소상공인·농민 등 서민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줄곧 국회 앞에서 법 개정을 호소해온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들이 이번엔 청와대 앞으로 운집했다.
8일 한국자영업자총연대와 전국한우협회, 대한한돈협회 등은 청와대 인근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김영란법 개정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인 수준으로 김영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 50여명은 ‘부정부패 막자더니 민생경제 뿌리뽑네’, ‘소통없는 김영란법 소상고인 다죽인다’ 등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김영란법 개정을 촉구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고위공직자 금품수수를 막아 청렴한 사회를 만들자는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재 상태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오히려 부정부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며 “정부에 김영란법 개정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소상공인들은 현재 규정대로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손실액이 연간 12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액 기준은 김영란법이 처음 발의된 5년 전 물가를 기준으로 정해진 것인데, 헌재 법안에는 변화된 물가 수준을 고려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지적이다.
이날 오호석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총회장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식사 3만원, 선물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라는 접대 금액 제한은 현실 물가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규정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며 “선물의 경우, 최대 5만원선에서 가능하다면 선택지는 대기업들의 공산품 정도 밖에 될 수 없으며, 국내산이 아닌 값싼 중국산에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어 국내 경제는 더욱 침체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선물이나 접대 항목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축수산물 유통업체들과 화훼업계, 음식점업계 등 소상공인은 피해를 보게 된다”며 “김영란법은 내수 경기 진작과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정부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추석 등 명절 연휴 선물이 전체 매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가와 축산업계 등은 김영란법 이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명절 선물수요가 크게 줄어 한우는 4100억 원, 사과와 배는 각각 1296억원과 287억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중소상공인들은 기본 생존권을 위협하는 김영란법을 현실적으로 개정하고, 내수 경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소상공인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김영란법 시행 두달여를 앞두고 전국민적인 반대 여론이 확산되면서 정치권도 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등은 김영란법에서 ‘농축수산물’과 ‘가공품’ 등은 금품 수수 금지 품목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강효상 새누리당 의원은 그동안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었던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을 배제하는 대신 국회의원을 포함하는 등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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