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맥베스, 리어왕’
다음 작품들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ㆍ1564-1616)가 집필했다는 점, 그리고 작품 속에 ‘유령’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햄릿, 맥베스 그리고 리어왕 속 그들처럼 셰익스피어는 ‘유령’이었을까. 수많은 희곡과 소설을 냈고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를 향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그는 400년 가까이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원작자가 따로 있다 등의 의심을 받아왔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를 두고 일고 있는 논란만 30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셰익스피어는 음모론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올해로 사후 400년을 맞은 셰익스피어. 그를 향한 숱한 이야기들 중 굵직한 ‘4대 음모론’을 정리했다.
◆하나,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1785년 제임스 윌모트라는 학자는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살던 지역을 찾아가 그에 대해 파헤치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그와 관련된 어떤 것도 찾지 못한다.
이후 몇 백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셰익스피어의 삶을 설명해줄만한 자료는 발견된 것이 거의 없다.
부모·부인·자녀의 이름, 생일, 세례를 받은 날짜(1564년 4월 26일)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직업은 장갑 장수였다는 것, 열여덟 살 때 그보다 8년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는 것, 1597년 고향에서 두 번째로 큰 대 저택을 구입했다는 것, 눈물관에 생긴 암 때문에 52세로 사망했다는 것이 전부다.
문서라곤 결혼 허가증서, 부동산 거래 기록, 유언장만이 전해진다.
◆둘,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쓴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대한 의혹을 내놓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자설 논쟁’을 키운 것은 델리아 베이컨이라는 미국인 여성이다. 그녀는 철학자 겸 정치가로 잘 알려진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자라고 주장했다. ‘톰소여의 모험’으로 잘 알려진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과 장애를 딛고 세계적인 교육가로 활동한 헬렌켈러도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지지했다.
일부 학자들은 베이컨이 작품 속에 암호로써 자신을 밝혔다고 굳게 믿기도 했다. 이들은 끊임없이 그 암호를 풀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베이컨이 원작자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쓴 원작자로 거론되는 또 다른 인물은 옥스퍼드 백작이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드 비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그려진 인물이나 배경이 그의 삶과 너무나 닮았다는 점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작품 ‘햄릿’ 속 햄릿과 같이 그는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재혼을 했으며,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의 버트럼처럼 잠자리 속임수에 넘어가 자신의 아내와 동침했다. 또 그의 성품은 리어 왕의 광기, 오셀로의 질투심, 맥베스의 저항적 태도와 비슷했다고 알려져 있다.
심리학자로 알려진 ‘지그문트 프로이드’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것이 아닌 옥스퍼드 백작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그는 대학도 나오지 않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셰익스피어가 그려내기엔 작품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여기엔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가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은 확실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당대의 거의 모든 문헌을 읽었으며 당시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프랑스어, 이탈리어 고전까지도 섭렵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의 작품은 ‘읽기’의 힘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셋, 셰익스피어는 당시에도 최고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가진다. 그래서 그가 쓴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불리며 사랑받는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살아있던 시대에도 사랑받는 작가였을까.
기록에 의하면 1594년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서 상연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는 왕실 소속의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물론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24년동안 그가 집필한 38편의 작품은 대부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극작가로써는 동시대 천재 극작가로 불린 ‘스페인의 비극’ ‘코넬리아’를 쓴 토머스 키드에 가려졌다. 셰익스피어는 생전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잘나가는 희곡 작가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넷, 셰익스피어는 표절의 대가였다
천재 작가라 불리는 셰익스피어도 표절을 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작품을 번안하는 걸 넘어서 자기 표절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번안의 대가, 표절의 거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만 르네상스 시대의 모방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남의 글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소화해 그 장점을 취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가운데 상당수는 그가 타인 작품과 아이디어를 적절하게 조합해 오리지널 작품과는 다른 작품으로 승화 시킨 것이다. ‘햄릿’의 경우 덴마크의 옛 전설에 기초해 셰익스피어가 그의 상상력과 새로운 언어를 동원해 재창조한 작품이다.
[디지털뉴스국 김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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