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를 닮아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아이는 요즘 눈만 뜨면 걷는다. 돌을 막 지나 걷기 시작한 아이는 멈추지 않고 열발짝 이상 뗄 수 있다. 기분이 좋을 때면 종종걸음까지 친다. 직립 보행을 하며 두 손의 자유를 얻은 덕분에, 또 두 발로 자기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어 아이의 눈은 항상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밌는지 ‘꺄르르’ 소리내 웃을 때도 많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자녀는 세살 때까지 부모에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옛 말이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둬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귀염둥이다.
그런데 난 그런 귀염둥이에게 요즘 “안 돼”라는 말로 행동에 제약을 걸기 바쁘다. 자신의 의지대로 마구 움직이는 아이에게 집안 구석구석은 참 위험한 곳이 많아서다.
까치발로 부엌 씽크대 문을 곧잘 여닫는 아이는 혼자 힘으로 이를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얼굴에 가득하다. 하지만 난 씽크대 문 안쪽에 꽂아둔 식칼부터 눈에 들어온다. “헉! 안돼! 저리가 여긴 위험해.”
잠에서 깨자마자 엄마부터 찾는 아이는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있는 내게 거리낌없이 걸어 들어온다. 바닥에 물기라도 있으면 미끌미끌 위험천만하다. 이미 화장실에서 뒤로 벌러덩 넘어져 큰 일 날 뻔한 적이 있는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또 말한다. “안 돼! 안된다고, 들어오지마!” 영문을 모른 채 굳게 걸어잠근 화장실 문 앞에서 아이는 대성통곡한다.
아파트 베란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낮 동안 올라간 기온 탓에 베란다 문을 잠깐 열어놓고는 하는데, 어느 틈엔가 베란다로 나가 미세먼지를 가득 들이마시고 있는 아이다. 게다가 안전대가 설치돼 있다고는 하지만 안전대 사이사이로 어쩐지 아이가 꼭 빠져나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상상만해도 아찔한 난 “안 돼!! 이리와. 거긴 절대 안된다고 했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하는 바로 잡기위해서 역시 “안 돼”라는 말을 난 늘 달고 산다. 분명 좀 전에 대소변을 본 기저귀를 꽁꽁 싸 버렸는데, 어떻게 알고 가져왔는지 기저귀를 풀어헤쳐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려고 한 적도 있다. 제빨리 기저귀를 빼앗은 난 “안 돼”라고 소리친다.
아빠나 선생님의 얼굴을 갈귀갈귀 할퀴려 할 때도, 바닥에 떨어져있는 물건은 모조리 입으로 가져갈 때도, 양치질 하기 싫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울 때도 난 한결같이 평소보다 2배는 높은 톤과 성량으로 “안 돼~!”라고 외친다.
반드시 제지를 해줘야하는 행동 앞에 “안 돼”라고 소리치지만 사실 이 말을 할 때면 여간 미안한게 아니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에게 지금은 한창 탐색·탐험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만져보게 하고, 스스로 위험하고, 잘못된 것을 인식할 수 있게끔 기다려주고, 도와줘야하는데 성질 급하고 인내심 부족한 부모는 그저 안 돼라는 말 한마디로 아이의 호기심을 싹둑 잘라내버린다.
또 집안 구석구석 가구나 짐들은 어른 사용자에 맞춰진 것들이지, 어느 하나 아이를 고려해 놓아 둔 것은 없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물건은 다 자기가 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 집에 같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 당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미안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위험한 것은 애당초 못 만지도록, 위험한 곳에는 못가도록 집안 살림을 옮기고 또 숨기자니 내가 너무 불편하다. 너무 꽁꽁 숨긴 탓에 그 물건이 필요할 때 정작 찾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차피 치우고 씻어야하는데 그냥 아이가 어지럽히도록,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자니 이것 역시 못 할 일이다. 마치 내일 당장 이사갈 집 마냥 곳곳에 쌓이는 짐짝들과 쓰레기로 인해 집안이 돼지우리로 변하는 게 순식간이어서다. 그래서 난 “안 돼”란 말을 당분간은 달고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말이다.
대신 무작정 안 돼라고 말하기보다는 아이의 월령별로 주의를 주는 방법을 육아 커뮤니티에서 발견했는데, 효율적이고 체계적이어서 육아맘들과 공유하며 내 머릿속에도 입력해 본다.
우선 “안 돼”라고 말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첫째, 일관성이다. 어떤 행동은 할 수 없고, 어떤 행동은 할 수 있다는 기준이 항상 일관돼야한다는 얘기다. 둘째, “안 돼”라는 주의와 “잘했어”란 칭찬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셋째, 아이의 수준에 맞는 방식으로 “안 돼”라고 주의를 줘야한다는 점이다.
아이 수준에 맞는 방식이란, 0~12개월때에는 아이와 눈을 맞춰 말하는 것은 기본이고 위험한 물건을 만지려고 할 때 손목을 잡아주는 게 좋다고 한다. ‘동작 중지’를 뜻하는 도리질 등의 신호를 인식시키는 일 역시 이 시기 필요하다.
13~24개월때에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앉은 후 두 팔을 살며시 잡고 눈을 맞춘다. 표정만으로도 의미가 전달될 만큼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한 두 단어로 간단하고 명확하게 지적해주는 것이 좋다. 25~36개월의 경우 아이를 불러서 마주 앉힌 후 쉬운 단어로 구체적인 잘못을 얘기해 줘야 한다. 잘못한 행동을 고치도록 대안을 제시해주고 선택하도록 하는 일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생후 13개월인 내 아이는 아직 일방적으로 엄마의 “안 돼”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곧 서로의 잘못을 논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엄마는 오늘도 하나 또 배운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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