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운송업체 실수로 고가의 군사장비를 잃어버린 방산업체가 운송사의 책임을 제한한 국제협약 때문에 제대로 배상받지 못할 뻔 했으나 대법원 판결로 위기를 모면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방산용품 공급업체 A사가 화물 분실로 생긴 손해를 배상하라며 국제항공운송업체 B사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21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대법원은 “국제항공운송계약에 몬트리올협약이 적용되려면 출발지와 도착지가 모두 협약 당사국이어야 한다”며 “출발지인 대한민국은 당사국이지만 도착지인 아이티는 당사국이 아니므로 협약이 적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지역이라고 해서 유엔의 주도 하에 체결된 국제협약이 당연히 적용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아이티가 협약국이 아닌 이상 유엔군이 배송목적지라고 해도 협약은 적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사는 2011년 9월 B사를 통해 아이티공화국 내 유엔군 기지에 주둔하는 국군부대에 광파거리측정기 두 세트를 보냈다. B사는 항공운송 도중 개당 2000만원이 넘는 측정기 한 세트를 분실했고, A사는 이 장비의 납품가격과 납품 지연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냈다.
B사는 재판에서 우리나라가 2007년 가입한 ‘몬트리올협약’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몬트리올협약은 비행기로 화물을 국제운송하던 중 분실·파손한 운송인의 손해배상 책임을 화물의 실제 가치가 아니라 화물 중량 1㎏당 19 SDR(IMF 특별인출권), 우리 돈 약 3만2660원으로 제한한다.
1·2심은 B사의 주장대로 몬트리올협약이 적용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이 협약 적용 대상이라고 인정한 하급심의 전제 자체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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