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한국영화 '오빠생각'의 흥행을 위해 금융사들에 영화예매권을 대량으로 사들여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금융위는 금융사들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정부기관의 '요청'은 사실상의 '강매'로 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24일 영화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최근 은행·보험·증권사 등에 지난 21일 개봉한 '오빠생각'의 예매권을 최소 3천장에서 최대 5천장까지 사달라고 유선상으로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
연합뉴스 취재 결과 이런 요청에 응해 예매권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확인된 금융사만 10여곳에 이릅니다. 이들 금융사는 금융위가 지정한 예매처를 통해 장당 6천원에 예매권을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관람권의 정가는 9천원입니다.
S은행은 3천장을 매입해 자사 콜센터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직원들에게 나눠 줬으며, W은행은 5천장, H은행은 3천장을 각각 사서 고객 사은품으로 영화 관람권을 활용할 계획입니다.
H보험사도 3천장을 사들여 보험 상품 판촉에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금융사가 금융위의 요청에 응해 매입한 물량이 최소 3만여장에 이릅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금융사를 감독해야 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정부기관이 하면 안 되는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공무원의 직권남용에 해당할 뿐 아니라 정부가 영화 시장의 경쟁질서에 개입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영화의 사전 예매율과 개봉 초기 관객 수는 그 영화의 흥행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이런 대량 매입은 영화시장 질서를 왜곡하게 합니다.
CGV 리서치센터는 사전예매 관객 100명이 영화를 보면 구전 효과 등으로 추가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최고 1천3명에 달할 수 있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개봉 초기에 예매율이나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면 '저 영화가 재미있다보다'라는 인식을 심어줘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데 훨씬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빠생각'의 영화 배급사와 예매처 계약을 맺은 예스24는 지난 20일 예매순위에서 이 영화가 개봉 첫 주 예매율 21%로 1위를 차지했다고 홍보했습니다. 영화는 개봉일인 이튿날(21일) 7만8천63명(매출액 점유율 26.8%)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주말에 접어든 이튿날 8만3천124명(25.4%)으로 디캐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25.3%)를 간신히 따돌린 데 이어, 23일에는 16만7천527명(24.3%)에 그쳐 개봉 사흘 만에 2위로 밀려났습니다.
특히, 지난 사흘간 '오빠생각'의 상영횟수는 21일 4천145회, 22일 4천162회, 23일 4천31회로, '레버넌트'(2천588회∼2천892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금융위가 영화 흥행을 위해 영화관 측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드는 대목입니다.
'오빠생각'의 좌석점유율(상영관 전체 좌석수 가운데 입장한 관객수의 비율)은 21일 9.5%, 22일 10.1%, 23일 20.7%로, 박스오피스 순위와 비교하면 매우 저조한 편입니다.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오빠생각' VIP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임시완이 지난해 8월부터 정부의 금융개혁을 알리는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이 결합한 서비스) 홍보대사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배급사 뉴(NEW)의 박준경 영화사업부 이사는 "'오빠생각'은 금융사들의 이미지 홍보나 상품 판매에 좋은 가족영화"라며 "금융위 핀테크 지원센터에서 영화 홍보를 많이 해서 금융사 자체적인 프로모션이 많이 이뤄졌을 뿐, 강매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는 "영화표 구매를 금융위가 조직적 차원에서 강매·할당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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