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4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는 검찰 수뇌부가 숨죽일 만큼 결정적인 계좌추적 결과를 보고했다. 2007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결정지을 만한 증거였다. 한 전 대표가 9억 원 가운데 유일하게 수표로 건넸다고 진술한 1억 원의 사용처를 찾기 위해 계좌추적 요원 10여명이 한 달 간 철야 끝에 종착지를 파악했다. 대법원은 결백을 주장해온 한 전 총리를 상대로 지난해 8월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쓰나미식 계좌추적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은 물론 재계와 관가에서 계좌추적의 위력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 요구권)은 부패한 정관계 인사들의 검은 돈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의 금융거래를 마음대로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여기에 온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오는 9월 시행되면 계좌추적의 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현존하는 공포다.
한 법조계 인사는 “공직자는 물론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까지 대상으로 하는 탓에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악성 제보와 포상금을 노린 ‘묻지마’식 신고로 선의의 피해가 염려된다”고 말했다. 법 적용 대상은 피신고자의 배우자까지 무려 300만명에 이른다. 심지어 계좌조회가 이뤄져도 당사자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극대화한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은 수사기관이 금융기관에 계좌추적 사실 ‘통보 유예’를 요청하면 6개월 동안 당사자에게 통보를 유예토록 규정했다.
[서태욱 기자 / 부장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