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의 남쪽을 떠받치는 기둥인 해발 632m 관악산.
그곳에 하루에 두 번씩 늘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주일에 도합 10번씩 관악산 정상을 정복하는 이들의 발자욱은 등산로는 물론 길이 없는 험한 산 속까지 속속 찍혀있다. 걸출한 산악인 엄홍길도, 관악산에서 동계훈련 중인 국가대표 운동선수도 아니다. 이름조차 밝히길 부끄러워하던 이들은 스스로를 ‘관악의 하늘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1년째 관악산 환경미화원의 삶을 살고 있는 장미연(61·여·가명)씨와 2년차 동료 김정화(57·여·가명)씨다.
날마다 오르내린 관악산의 정기를 받아서일까. 23일 만난 장씨와 김씨는 무거운 가방을 매고 산세가 험한 관악산을 오르는데도 지친 기색이 없다. 등산로 옆 미끄러운 바위를 능숙하게 타더니 쓰레기 줍는다. 휴지로 가득찬 5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를 들고 등산로를 종횡무진하는 강철 체력들이다. 조용할 틈이 없이 계속 수다를 떨면서도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더러운 공중화장실을 5분안에 청소해내는 모습은 이들이 60대 여성이 과연 맞나하는 의구심까지 들게했다. 20대 기자가 따라가기 급급해하자 “기자라는 양반이 취재와서 말은 안하고 숨만 헉헉대는 것이 참말로 거시기허요” “이래 약해가 어따 쓰겠노?” 등등 구수한 사투리로 핀잔이 쏟아지기도 했다. 능숙한 일처리와 협업은 마치 ‘셜록과 왓슨’에 비견할 만했다.
요즘같은 연말연시가 돌아오면 ‘하늘지킴이’들은 더 바빠진다. 크리스마스, 신정, 구정 등 휴일마다 사람이 더욱 몰리기 때문이다.
보통 연휴기간 전날에는 오후 7시가 넘어서까지 청소를 해야한다. 여기에 연휴 당일 새벽같이 나와 다시 한번 청소를 해야 손님 맞을 준비가 제대로 끝난다. 건강하다고 하지만 나이가 60 안팎인 여성들이다. 연휴철 고강도 노동이 끝나고 나면 손이 안 오므려질 정도로 온 몸이 퉁퉁 붓는다고 장씨와 김씨는 말했다. 장씨는 “남들 다 쉬는 날 일해야 하니께 기분이 썩 거시기 허제. 거기에 두 배로 일해야 하니께 기분이 더 거시기 해불지”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래도 이들은 쉽사리 관악산을 떠나지 못한다. 산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때문이다. 장씨는 “화장실 청소를 겁나게 잘해 부러서 호텔 화장실 같다고 등산객들이 말하믄 농담이래도 참말로 힘이 난당께. 그 맛에 다시 산에 와불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장씨와 김씨의 임무는 다양하다. 청소는 기본이며 여름철에는 장미 정원을 가꾸거나 등산객을 위협하는 쓰러진 나무를 처리해 관악산의 안전을 책임진다. 부상당한 등산객에겐 빠르게 응급처치를 해주는 든든한 구급대원이며, 산에서 흡연을 하거나 등산로를 이탈하는 사람들에겐 무서운 보안관이다. 관악산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들이 벌이는 만담에 소리내어 웃어본다. 김씨는 “청소부라고 쉽게 얘기하지 마라. 우리 여기서 얼매나 많은 일 하는지 아나? 이런 재미로 일한다 아이가”라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겨울철 관악산은 어지간히 공력이 쌓인 두 사람에게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여기에 하얗게 내린 눈 속에 쓰레기를 숨겨놓는 얌체 등산객까지 급증해 업무의 노동강도도 더 높아진다. 김씨는 “쓰레기를 감추면 그것을 일일이 찾아야 안하나, 바위 위에는 특히 더 미끄러가 억수로 위험하데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의 새해 소원은 소박하다. 장씨는 “뭐 별거 있당가. 건강하게 이렇게 70살까지, 아니 정년까지만 일하다 퇴직하면 쓰겠는디”라고 말했다. 이를 듣던 김씨 역시 “하모, 근데 이래 사람들이 쓰레기 많이 버리면 관악산도 죽고, 우리도 죽겠다 아이가”라고 말을 받는다. 그는 “기자 양반이 좀 잘 써서 관악산 등산객 꾸중 좀 해주소. 휴일만 되면 똥밭이다 똥밭”이라며 이내 혀를 끌끌 찼다.
관악산을 내려오던 그녀들은 산책로와 공원에 널린 쓰레기를 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청소를 시작했다. 추운 겨울 두 ‘하늘 지킴이’는 그렇게 관악산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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