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최근 아마추어 골프대회가 열렸다. 북한군이 동·서해안에서 밤낮 없이 포를 쏘며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는 와중에도 평양에서는 평화롭게 '편 먹고 공 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21일 조선중앙통신은 "가을철 골프 애호가 경기가 평양골프장(파72·6382야드)에서 진행됐다"고 도보했다. 통신은 "이번 경기에서 선수들은 기술 수준과 나이, 성별에 따라 4개 부류로 나뉘어 치기회수경기방식(스트로크 플레이)으로 승부를 겨뤘다"고 전했다. 또 "애호가들의 기술수준 제고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형식의 골프 오락 경기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날 보도한 사진들을 살펴보면 대회에 참여한 골퍼들은 35명 정도로 파악된다. 북측이 밝힌 대로 골퍼들은 대부분 '동호인' 수준의 경기를 펼친 것으로 보인다. 대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골프협회'가 주최했다. 개회식 장소에는 '려명(여명) 골프 여행사'라고 쓰인 광고판도 설치되어 있었다.
◆ 北유일 18홀 정규코스…KLPGA대회도 열려
평양골프장에서 열린 아마추어 골프대회 행사 장면. 골퍼들 옆으로 `려명(여명) 골프 여행사`라고 적힌 광고판이 눈에 띈다. [사진 = 조선중앙통신]
이번 대회가 열린 '평양골프장'은 북한 내 유일한 18홀 정규코스로 알려졌다. 평양 시내에 있는 양각도 골프장과 남포특별시에 있는 골프장 등은 9홀 규모다. 평양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27km 떨어진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에 있는 평양골프장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자금으로 1987년에 건설됐다.이 골프장은 남북 간 '골프 교류' 현장으로도 활용됐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지난 2005년 평양골프장에서 평양오픈골프대회를 열었다.
북한의 골프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통상적으로 드는 비용을 감안하면 북한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 포스트 코로나 관광재개 시동?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이례적으로 '골프장'을 홍보하고 나선 것은 해외 관광객 유치를 재개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도 세계적인 골프 인기를 아는 만큼, 구매력있는 외국인 골퍼 관광객들을 유치해 빡빡한 외화 사정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것이다. 관련 보도사진에 골프 전문 여행사 광고판을 노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관광은 북한으로서는 대북제재를 건드리지 않고 외화를 벌 수 있는 드문 합법적 경제수단이기도 하다. 현재 유엔과 미국 등의 대북제재상 개인 자격의 개별적인 북한 관광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유엔 결의에는 북한에 '벌크 캐시(대량의 현금)'을 유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구체적인 액수를 정해놓지는 않았다. 개인들의 여행 비용은 벌크 캐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각국의 판단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평양골프장에서 '평양 국제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열었다. 이후 리모델링 등을 이유로 경기를 열지 않다가 지난해 이곳에서 동호인 골프대회를 재개했다.
◆ 관광진흥, 핵 위협과 함께 갈 순 없어
평양에서 열린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골퍼들이 캐디들과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조선중앙통신]
관광 분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사실상 국가 기간산업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중시되어 왔다. 관광대국인 스위스에서 학창시절의 보낸 김 위원장의 개인적인 경험도 '관광산업 드라이브'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빠듯한 경제상황 속에서도 △평양 문수 물놀이장 △강원도 마식령 스키장 △강원도 원산 갈마 관광지구·비행장 △평안남도 양덕온천 등 관광 시설을 확충하며 공을 들였다.다만 북한 관광산업 최대의 장애 요인은 다름 아닌 김 위원장 자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지난 달 그가 한·미·일은 물론 세계를 상대로 펼친 일련의 전술핵 운용부대의 핵 타격 연습은 관광지로서의 북한이 가진 매력을 깎아먹었다. 최고 지도자가 핵 공격을 을러대는 나라에 놀러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현재 러시아의 현실을 봐도 그렇다.
관광객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억류돼 결국 혼수상태로 풀려나 희생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태 당시에 북한이 보여줬던 자세 역시 매우 관광 비(非)친화적이었다. 당시 북한이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도 지금과 같은 북미관계와 관광산업의 현실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을 가보고 싶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도, 갈 수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도 김 위원장인 셈이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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