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 지하철에서 지인을 만났다. 우린 간단히 인사하고 마스크를 쓴 채 나란히 섰다. 그런데 우리 앞에 앉은 두 명의 노인이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 꽤 큰 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들렸다. 두 노인은 코로나19 백신 얘기도 했다. 나는 으레 듣는 정부 비판 같아 한 귀로 흘려듣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인이 "요즘 대통령과 청와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게 몇 번 있어"라고 했다. "대통령의 책임에 대해서 말이야." 나는 그에게 무심코 "왜?"라고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재가한 것과 관련된 청와대의 설명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설명은 이랬다. "검사징계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징계 제청을 하면 대통령은 재량 없이 징계 안을 그대로 재가하고 집행하게 된다." 그는 '재량이 없다'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검찰총장 징계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에 앞서 법무부 장관이 그를 직무에서 배제한 것도 헌정 사상 초유다. 나라가 두 쪽 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재량이 없다고 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이 문제에 입장을 밝히고 어떻게 대처할지 국민 앞에 설명하는 게 대통령의 책임에 부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내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검사징계법을 굳이 따지자면 대통령에 재량이 없는 걸로 해석되기는 한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검사징계법에는 관련 규정이 이렇게 적혀 있다. "제23조(징계의 집행) ① 징계의 집행은 (중략) 해임·면직·정직·감봉의 경우에는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대통령이 자기 뜻대로 징계위원회의 의결을 바꾸면 징계위는 무력화될 것이다. 법조문만 엄격히 따지면 대통령은 징계위 의결을 따르는 게 맞는다는 법조계 해석도 많다.
그러자 내 지인은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징계위 의결을 뒤집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은 중대한 국정 현안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제대로 사안을 풀어갈 책임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총장 징계 같은 중대사에 대통령은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 단지 대통령이 징계위의 당연직 위원인 법무차관에 친여 성향의 변호사를 앉히고, 징계위 의결 전날 무소불위의 검찰 개혁을 비판한 데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그게 과연 대통령으로서 온당하게 책임지는 자세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어쨌든 법무부 장관이 소속된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 나아가 국가의 선출된 최고 지도자로서 헌정 사상 초유인 검찰총장 징계에 대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검찰총장 징계는 단순한 법적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인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최근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상향'과 관련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고 했다. 지난 13일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긴급 주재하면서 했던 말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은 이랬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3단계로 높이는 것은 마지막 수단입니다. 중대본에서는 그 경우까지 대비하여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결단해 주기 바랍니다."
지인은 "과감하게 결단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 있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통령 말 그대로 3단계 상향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마지막 수단일 정도로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국민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그런 결단을 대통령이 아니고 누가 할 수 있겠느냐는 게 내 지인의 주장이었다.
물론 지인도 대통령이 방역 전문가가 아니라는 걸 안다고 했다. "그래서 말이야. 본인이 직접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진짜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판단의 책임은 모두 대통령이 질 테니, 그 어떤 비판도 모두 대통령이 안고 갈 테니, 중대본은 오로지 국가를 위해 최선의 판단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책임지는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겠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중대본에 "결단해 달라"라고 요구하는 건 자칫 대통령은 책임을 면하고 싶어 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데 공감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 계약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다고 했다.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효과와 안정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백신을 선구매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결정이라고 했다. 자칫 효과가 없는 걸로 임상 시험 결과가 나오면 예산만 날리는 꼴이 된다. 나중에 국회에 끌려가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바로 그 공무원들의 부담을 덜어줄 책임 역시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니, 선구매 결정이 최선이라면 그 책임은 내가 모두 안고 가겠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선구매 결정에 참여한 공무원이 부당한 책임을 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라고 공무원들을 안심시키는 게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농담조로 "대통령도 사람인데 혹시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 그는 웃었다. 창밖으로 그가 내릴 지하철역 간판이 보였다. 그는 급히 뛰어내렸다. 큰 권한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제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만큼 국민이 그에게 요구하는 책임도 막중하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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