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침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김포 파주 강화 등지 농장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벌써 5군데다. 우리 정부는 ASF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유입됐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진행중인 차단방역 작업이 ASF바이러스 전파를 실제로 막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북한에는 지난 5월부터 ASF가 발병해 많은 지역으로 확산됐다는 소식이다. 평안북도에선 돼지가 아예 전멸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이 2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이다. 우리 정부가 가만히 있었던건 아니라고 한다. 이미 5월에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방역협력 통지문을 보냈고 이달 18일에도 협력요청을 했는데 북한이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남북 정상이 지난해 9월 평양에서 합의한 공동선언 위반이다. 이 선언에는 '전염병 유입·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북한이 공동선언을 위반하거나 말거나 우리 정부의 태도는 참으로 한결같다. 북한에 일관되게 협력과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문제 삼으며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우리 정부가 지원하려는 쌀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북한에 쌀 5만톤을 지원하겠다며 예산 8억원을 들여 쌀포대 130만장 제작을 강행했다. 통일부는 "쌀포대 제작이 순서상 먼저"라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주면서 뺨맞는 기분'을 느끼는 국민이 어디 한두명이겠는가.
이런 분위기라면 ASF 전파를 놓고 북한의 비협조에 불만을 전하는 일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오히려 "돼지떼를 몰고 방북하자"는 황당한 주장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1,001마리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은 이후 20년 넘게 흘렀지만 북한 태도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알 수 없다.
한반도 평화경제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모든 일에는 우선 순위가 있다. 북한이 성의 있는 자세로 한국과 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전염병 정보교환·방역협조와 같은 남북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것도 기본적인 일에 속한다. 이런 기본적인 일들이 모두 무시당하는데 일방적으로 북한 눈치를 살피고 그들을 지원해주자고 해선 곤란하다. 상처난 국민의 자존심도 살펴야 한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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