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용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7일 미국 워싱턴 출장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주재한 외교부 실국장회의에서 최근 언론에서 회자되는 '코리아 패싱'이란 용어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코리아 패싱은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한국만 배제되는 현상을 나타내는 신조어다. 국내 리더십 공백 속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주한 미국 대사의 공백이 장기화되며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복수의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윤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코리아 패싱'을 언급하며 "그 어느 정부 교체기보다 현재 한·미간 고위급 소통이 긴밀히 이뤄지고 있다"며 "코리아 패싱이라는 용어가 회자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처하라"고 외교부 간부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윤 장관은 "'코리아 패싱'은'코리아 배싱(Korea Bashing·한국 때리기) '이라는 용어에서 파생된 것 같다"며 문법적으로도 틀린 말이고 최근 현실을 반영하지도 않은 용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23일(현지시각) 주일 미국 대사의 지명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동북아 3강(중·일·러) 대사 인선이 완료된 상황에서 주한 미국 대사의 공백만 장기화되는 현실이 바로 '코리아 패싱'의 단면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사임한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의 자리는 두 달 넘게 공석이다. 그의 후임자로 누가 하마평에 오르는지도 깜깜 무소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주한 대사가 임명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트럼프 외교·안보 고위 인사 대부분이 공석이라 이 자리까지 신경을 쓰지 쉽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확정한 대사 지명자는 중·일·러 등 동북아 3강과 유엔·영국·이스라엘·세네갈·콩고공화국 등 8개국 대사다. 곧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예상되고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한국이 중국에 강도 높은 경제 보복을 당하고 있지만 한국의 중요성이 이 국가들에 비해 처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직업 외교관이 대사로 지명된 세네갈과 콩고는 논외로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남은 6개국 대사를 대통령의 정치적 측근이나 중량감 있는 정치적 인사를 앉혔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에서 곧 차기 정부가 들어서니 미국에서도 속도 조절을 하는 것 아니냐"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국내 리더십 공백이 한국 외교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 트위터와 기자간담회 등 공개적 자리에서 북핵 문제를 언급할 때 한국을 단 한 차례도 거론하지 않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할 때를 제외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비판하는데 중국을 압박하고 일본과 협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을 뿐 아직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미·중 혹은 일본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북·미 양자간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제기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협상을 나선 적은 없어 코리아 패싱은 과도한 우려가 섞인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4월 초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 외교부가 어떠한 액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역시 레토릭 외교에만 머물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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