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뒤 정권이 교체되면 모든 국가 어젠다가 바뀔 텐데 지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세종시 경제부처 국장)
"장·차관의 업무지시가 당분간 안 먹히겠죠. 어차피 두 달 뒤면 바뀔 텐데……."(정부 산하기관 임원급 인사)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10일 세종시 관가에서는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TV 생중계를 시청하면서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탄핵을 찬성했던 반대했던 상관없이 조기 대선이 몰고 올 여파와 향후 국론 분열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는 공무원들이 많았다.
세종시 중앙부처의 한 과장은 "공무원 조직의 최정점인 대통령이 파면된 것은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공무원들에게는 충격"이라며 "정치적 혼란 속에 당분간 일하는 데 의욕을 찾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식당을 찾은 공무원들도 하나 같이 대통령 파면을 이야깃거리로 올리고 의견을 나누는데 열중했다.
경제부처의 한 서기관은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고위공무원 인사와 국정과제 추진이 부족하나마 이뤄질 수 있었지만 이제 '벚꽃대선'이라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 상황에서 관가는 그야말로 '올스톱'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당분간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위공무원과 공공기관장 인사는 물론이고 기존 추진해 오던 국정과제는 전부 휴지통으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고위공무원 인사부터 동맥경화 현상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상당 기간 장·차관급 인사가 교체되지 못하면서 고위공무원들의 인사숨통이 꽉 막힌 상황에서 대통령 파면 이후에는 승진 대상자들조차 승진을 원치 않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두 달 뒤면 새 정부가 탄생하는 상황에서 전 정부에서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했거나 요직에 임명됐던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길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
10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새롭게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하는 인원은 월 평균 26명에 달했다. 2015년에도 한 달 평균 25명의 고위공무원 승진자가 나왔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두 달여 동안 고위공무원 인사가 꽉 막힌다고 하면 최소한 50명의 고위공무원 승진자가 나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승진뿐만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전보 인사도 당분간 사실상 어려워질 전망이다. 적재적소 인재 배치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인사혁신처 고위 관계자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은 한 나라의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등뼈와 같은 존재"라며 "장관에게 맡겨진 전보인사 조치마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제되는 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도 "법적으로는 대통령 권한대행 주도로 인사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현 상황에서는 실제 인사조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장 인사는 더 꽉 막힐 가능성이 높다.
공공기관 알리오에 따르면 현재 12곳의 공공기관이 기관장 공석 또는 임기 만료 상태로 해당 기관의 경영공백이 염려된다.
공공기관들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치적 혼란기 속에 후임 기관장 임명이 지연되면서 경영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다. 황 권한대행이 20여 곳의 공공기관장을 임명했지만 이들 역시 새 정권이 들어서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처였던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홍역을 치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의 공백이 심하다. 이들 두 부처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후임 인선절차를 착수조차 하지 못할 것이란 분위기가 높다.
공공기관 고위 관계자는 "해당 부처 장관이 임명하는 공공기관의 경우 절차에 따라 인선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며 "새 정부 줄 대기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오히려 해당 부처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각 부처 별로 추진해 오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들도 본격적인 폐기 수순으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순실 게이트' 꼬리가 붙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4대 구조개혁도 좌초가 불가피하다.
17개 시도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미 지자체에서 관련 예산을 대폭 축소했고, 정부가 바뀌면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개혁 4대 법안은 20대 국회에서는 논의되지도 못한 채 정권이 바뀌어야 재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산업발전법, 자본시장법, 규제프리존법 등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법안도 결국 사라질 운명이다.
효율적인 정부를 구성한다며 추진했던 정부 3.0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도 모두 휴지통으로 향하거나 새 대통령으로부터 결정이 내려올 때까지 보류될 것이 유력하다.
[고재만 기자 / 최희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