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은 논쟁적인 정치인이다. 박근혜정부 탄생에 기여했으나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났고, 공천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탈당열차 탑승을 막판까지 주저하다가 마침내 미지의 땅으로 나선다. 공화주의 재건을 외쳐온 그에게서 조선시대 ‘사림파(士林派)’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결례일까. ‘불파불립’을 기치로 내걸고 보수신당을 창당하는 유승민 의원을 지난 22일 매일경제신문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했다. 그는 친박의 소멸을 자신하면서 망해가는 보수진영을 다시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 속이 시원한가.
▶속 시원한 건 전혀 없지만 이제 뒤를 돌아볼 수는 없다. 17년 전에 이 당에 들어와서 총선 때 석달 정도 나갔다 온 것 말고는 한자리를 지켜왔다. 새누리당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3당 합당을 한 이후 우리나라 유일 보수정당이었다. 그 안에서 환골탈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끝까지 투쟁해보려고 했다. 친박이란 사람들은 대통령을 진정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지키고 연장하는 데 정신이 팔렸다. 원내대표 경선까지 지고 보니까 유일한 당 개혁 수단이 비상대책위였다. 그래서 전권을 행사하는 거라면 독배를 마시겠다했더니 극렬히 저항했다. 보수개혁은 이 당에서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불파불립을 말했는데 무엇을 깨고 무엇을 세우나.
▶깨야할 보수는 헌법 가치를 안 지키고 과거 낡은 보수의 성공 방식을 고집하는 세력이다. 공화와 정의라는 헌법 가치를 제대로 지키는 보수를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대통령은 왕국의 왕이 아니라 법 앞에 평등한 시민이다. 재벌 이익이나 대변하는 부패한 보수로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최순실 사건에서 낡고 부패한 보수의 모습이 압축적으로 드러났다. 탈당한다고 우리 책임이 사면되는 것은 아니지만 망해가는 보수를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나.
- 신당 내에 노선 차이가 있는데
▶김무성 전 대표와는 재벌 개혁, 복지 등에서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새로운 개혁 보수의 실험을 못하면 신당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의 정체성이나 이념노선을 정할 때 정통적인 보수정책을 취하던 분들은 빠지고 개혁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맡기자고 했다. 야당과도 맞다고 생각하는 정책이면 때로는 협력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새누리당이 해온 방식과 저 사람들은 다르구나, 이제 행동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
- 그럼 진보진영과 차이는 뭔가.
▶제일 큰 차이는 안보다. 야당에는 남북관계나 한미동맹, 사드 문제에서 정통 보수의 입장에서 볼 때 도저히 같이 하기 어려운 주장을 해온 분들이 있다. 복지, 세금, 교육에서 보수가 개혁노선을 걷는다는 것은 책임감이 다르다. 청년수당, 아동수당도 그렇고 기본소득제도 무책임한 이야기다. 소득주도성장, 공정성장 같은 주장은 성장의 해법이 아니다. 재벌 문제도 민주당이나 정의당이 재벌 해체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대기업들에게 글로벌 리더로 나아갈 자유는 다 주지만 레드라인을 넘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요 정책이슈에 들어가면 개혁 보수와 기존 진보가 분명히 다를 것이다.
- 향후 새누리당과 다시 손잡을 가능성은.
▶개혁보수신당이 친박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 친박 핵심 실세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저 집단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소멸할 것이다. 대선 후보를 못내거나 아주 극우적인 인사를 내는 정도로 갈 것이다. 개혁 보수의 길로 가겠다는 초재선 분들은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적청산 대상들은 절대 같이 할 수 없다.
- 개헌에 대한 입장은.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로 가면 파라다이스가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국민 신뢰를 제일 못받는 국회가 행정부까지 맡는 것인데 말이 좋아 연정이지 자칫 재벌권력이 정치까지 지배할 수 있다. 4년 중임제로 가고 조건이 충족되면 선진국처럼 내각제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대선 전에는 안될 것으로 본다. 30년 만에 개헌 이야기하면서 기본권이나 경제·복지 조항을 다 제치고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면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 김무성 전 대표는 개헌론자인데.
▶탈당 정치인들 중에 개헌에 대해서 생각이 다른 분도 많다. 개헌이 신당의 당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개헌을 연대의 연결고리로 삼아서 ‘개헌 정치’를 하려고 당을 나가는 게 아니다.
- 내년 대선 전망은.
▶보수정권 10년을 했기 때문에 힘든 지형인데 최순실 사건까지 터졌다. 중도층이 정치적으로 엄청나게 진보화됐다. 지금 보수는 얼굴에 화장하는 정도로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올 단계가 아니다. 새로 시작하는 보수가 이제까지 새누리당을 지지해주신 분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면 성패는 볼 것도 없다.
- 합종연횡 가능성은.
▶낮게 본다. 대선에만 집착한다면 더 망할 수 있다. 기초 공사부터 해야지, 자칫 대선도 지고 보수도 못 구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 국민의당과 연대할 수 있나.
▶국민의당 전체와 연대하려면 노선과 가치가 100% 같지는 않더라도 안보든 경제든 동지의식이 있어야하는데 뜻이 다른 분들도 있지 않나.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하나.
▶개혁보수신당 경선에 참여한다면 당연히 환영한다. 외교 관료로만 지내다가 해외에 오래 계셨으니 대한민국이 겪어온 시대적 문제, 국민들이 느끼는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고 해법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최근 인터뷰를 보니 정당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민주주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선정의 결핍’이라고 말했는데 대통령이 된다면 해법이 이것이다, 자기 머리와 생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지도자인지 가장 궁금하다. 치열한 검증을 해서 지도자로서의 구체적인 비전이나 정책을 들어야 한다. 진보나 보수나 아바타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싫어한다.
- 탄핵 기각시 불복종 주장도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기각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보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시민혁명을 이야기하더라.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헌법질서를 얼마나 무시할지 우려된다. 대통령이 탄핵 소추를 당하고 헌재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이 위기가 헌법의 기본원칙을 안 지켜서 그런 것 아닌가. 그것을 규탄하던 야당 지도자가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
- 대선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은 가능한가.
▶결선투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 개정없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제 상식으로는 안된다고 본다.
[이상훈 기자 /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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