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에 한 획을 그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가결은 2004년에 이어 12년 만이다. 제16대 국회는 2004년 3월 12일 본회의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등 야3당 주도로 탄핵소추안을 기습적으로 가결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 ‘직무 정지’를 이끌어낸 바 있다.
12년 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순간 활짝 미소지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9일 본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정치 생명 최대 위기를 맞았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가장 큰 차이는 ‘결과 예측 여부’다.
딩시 탄핵 정국에서는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절대적 수적 열세로 인해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상정되기만 하면 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가결정족수는 181인이었는데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소속 의원 수만 합쳐도 195명에 달했기에 여유있게 탄핵소추안 본회의 통과가 예상됐고, 실제로 193명의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 인해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72간을 버텨 탄핵안 자동폐기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을 세우고 본회의장 점거에 나섰다. 그러나 3월 12일 새벽 3시 50분께 한나라당 의원들이 기습적으로 본회의장을 점령하면서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철통 수비가 무너졌고, 이날 오전 11시 5분 쯤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이 국회 경위들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와 경호권을 발동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 간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이번 박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몸싸움을 볼 수 없었다는 점 역시 12년 전 탄핵 정국과 차이점이다.
결과가 예측됐던 12년 전 탄핵 정국과 달리 이번 박 대통령 탄핵 정국은 개표가 끝날 때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지난 일주일 간 ‘비박(비박근혜)계 이탈’ ‘친문(친문재인)의 고의 부결)’ ‘국민의당의 물밑 반란’ 등 숱한 음모론이 국회에 횡행하기도 했다.
탄핵 사유에도 차이점이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안과 박 대통령 탄핵안은 모두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해서였지만 탄핵안에 적시된 구체적 법률 위반 사항은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가장 직접적인 사유는 선거법 위반이었다. 여기에 측근 비리와 경제 파탄에 대한 책임도 가중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서 ‘여당 지지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하면서 탄핵의 빌미가 됐다.
반면 박 대통령은 특가법상 뇌물죄를 비롯해 직권 남용과 강요,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이 주요 탄핵 사유로 적시됐다. 검찰이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결과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한 것이 탄핵 추진력이 됐다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은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고, 박 대통령은 검찰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지목됐다는 점 역시 차이점이다.
12년 만에 탄핵 정국이 재연되면서 유력 정치인들의 운명도 엇갈렸다.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정세균 국회의장은 탄핵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의원 중 한 명이었다. 정 의장은 당시 탄핵안 처리 저지를 위해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의장석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고, 이제는 탄핵안 가부를 놓고 의사봉을 두들겨 결과를 선언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뒤를 이을 정치인으로 지목했던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12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같은 배’에 타게 됐다.
2004년 탄핵 정국에서 정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아 탄핵을 결사반대했고, ‘탄핵 역풍’ 속에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는데 힘을 보탰다. 반면 추 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찬성했다가 역풍으로 인해 17대 총선에서 낙선하는 아픔을 겪었다.
추 대표와 정 의원은 201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유세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2년 전에는 다른 배를 탔지만 이번에는 한목소리를 내며 탄핵 정국을 주도했다.
12년 전 ‘한나라당 돌격대장’을 맡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몸싸움을 주도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이번 정국에서는 ‘비박계 좌장’을 맡아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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