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령이 입법 예고되면서 당장 이 법이 시행되는 오는 9월부터 내수 산업이 급속도로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애써 키우고 있는 농업현대화 사업과 관광 외식산업이 타격을 받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염려가 크다. 현재 외식산업 규모만 77조원 이상이고 골프산업은 15조원을 넘어선다. 청렴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김영란법 본래 취지와 달리 농업6.0방해법, 외식규제법, 인간교류축소법, 서비스고급화 방지법의 4대 악법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농업6.0 방해법
이번 시행령 때문에 축산산업과 과일산업이 뿌리채 흔들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는 앞서 살만한 농촌을 만들겠다며 정부가 올해에 농촌 활력제고를 위해 1조2711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정부가 값싼 수입산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농축산물 고급화 정책을 펴왔고, 농민들은 정부 시책에 따라 시설과 사료 투자를 늘려 농축산물 품질을 높였다. 국산 농축산물이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은 뛰어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사과, 배 등 과일의 경우 올해에만 정부가 고품질현대화사업으로 531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2014년과 작년에도 각각 537억원의 예산이 지원됐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 같은 고급화전략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급화 전략의 대표적인 축산물인 한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에만 한우와 낙농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를 위해 123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고, 이중 150억원은 지역단위의 한우암소를 개량하는데 투입된다. 황엽 전국한우협회 전무는 “정부가 20년 넘게 품질을 고급화라고 지원해주더니, 김영란 법 때문에 뒷통수를 맞는 격이 됐다”고 말했다.
과일과 한우 등은 명절에 선물세트로 주로 소비된다. 농협유통 양재점의 2012~2014년의 연평균 매출액을 살펴보면, 과일 선물세트는 설과 추석이 평월보다 각각 208%, 250% 높았다. 또 연 4조3000억원가량 한우 매출액 가운데 8300억원가량이 명절에 판매된다. 하지만 과일 선물세트의 절반이상은 5만원이상이며, 한우는 10만원이하가 7%에 불과할 정도다. 선물가격을 5만원이하로 제외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화훼산업 역시 공포에 질려있다. 공연한 걱정이 아니다. 지난 2003년 공무원행동강령에서 화훼류 꽃 선물 3만원, 애경사 화환 및 조화 5만원 초과시 부정 금품으로 처분하기로 하면서 매출액이 절반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 외식규제법
외식업계는 식사 한도가 3만원으로 설정되면서 외식산업 자체가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10일 발표한 ‘외식업 영향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외식업계의 연간 매출이 약 4조15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외식업체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3만원의 접대한도 설정에 따라 외식업체의 최대 약 30.6%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메뉴별로는 서양식, 일식, 한정식이 등이 김영란법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서양식이 60.3%로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주점업(50.6%), 일식(45.1%), 한정식(35.9%),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중앙회 관계자는 “영세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외식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김영란법 시행으로 서민경제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전통식품 등을 만드는 장인이나 중소상인들에게도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선물 상한선 5만원을 지킬 수 있는 품목은 대부분 대기업들이 만든 참치·햄세트 등 가공식품과 샴푸 등 생필품 선물세트”라며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중소상인들의 제품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롯데·현대·신세계 등 국내 3대 백화점의 올해 설선물 매출은 약 2000억원 수준이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명절 선물세트 매출이 20%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한우 등 프리미엄선물들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서비스고급화 방지법
서비스산업인 골프, 레저, 백화점, 고급 음식점 등도 직격탄을 맞을 사업군으로 지목된다. 이들 업종 대부분이 비즈니스 고객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의 마수를 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성장 기조 돌파구로 서비스산업 고급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 필요한 상황에서 김영란법 시행이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이런 이유로 제기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서비스산업 매출 성장률은 최근 5년새 15%에서 4%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은 ‘엎친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비스업 활성화를 위해선 제조업 중심 시대를 벗어난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지금은 고급화 등 다변화된 소비시장 창출이 필요한 때”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우선 골프장이 가장 충격이 클 업종으로 꼽힌다. 연간 100만명에 달하는 회원제 골프장의 영업이익률은 이미 지난해 -4.5%로 적자 전환했지만, 내년에는 김영란법 등의 영향으로 -12%까지 떨어질 것으로 한국레저산업연구소는 관측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고가 회원권 가격이 급락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러 1인당 식사가격이 상한선이 3만원으로 정해짐에 따라 호텔과 고급음식점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생존의 위협을 받을 것이란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3만원 이상 메뉴가 주를 이루는 고깃집이나 한정식집, 일식집을 찾는 발길이 뜸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우고기 1인 식단가는 7만 5000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 인간교류축소법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한층 조심스러워질 전망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기업들이 사업상 애로사항을 해결해달라거나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는 정부 공무원을 만날 수 밖에 없다”며 “김영란법의 경우 애매모호한 조항이 많아 공무원들이 만남 자체를 꺼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신 실장은 “이 경우 아쉬운 것은 기업등 민원을 하는 쪽”이라고 지적했다. 관가에서는 김영란법의 파급효과가 지난 2004년 실시된 접대비 실명제법 보다 훨씬 후폭풍이 클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004년 당시 정부는 접대비 실명제를 도입하자 법인카드 총 사용내역이 급감한 바 있다. 2003년 법인카드 총 사용액은 100조2000억원에 달했지만 이듬해인 2004년에는 83조3000억원으로 무려 17%가 감소했다. 시중에 풀려서 내수시장을 진작시켰을 17조원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셔 지난해 법인카드 이용금액은 147조원에 달했다. 단순 계산으로 2004년 접대비 실명제 당시 만큼 법인카드 지출이 줄어든다고 가정해도 그 금액은 25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법인카드 사용 감소폭은 2004년때보다 훨씬 클 것이란 분석이 많다. 김영란법이 다루는 내용이 워낙 포괄적인데다, 대상자도 300만~400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손일선 기자 / 서동철 기자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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