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9월 3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야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공천제에 대해 청와대가 비판하자 “당 대표에 대한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고 경고했다.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간 공천 신경전의 서막이었다. 이후에도 공천제도특위 인선부터 수차례 친박계 견제에 부딪혔으나 지난 7일 결국 상향식 공천 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야당이 인재영입 마케팅으로 이목을 끌고, 당내 일각에서 전략 부재론을 제기하자 김 대표 심기가 편치 않은 듯 하다.
그는 19일 한 행사에 참석해 “오랜 기간 수모와 모욕을 당해가며 참고 또 참아서 공천권을 완전히 국민께 돌려드리게 됐다”고 복잡한 소회를 드러냈다. 20일 총선기획단 첫 회의에선 “정치사에 큰 혁명인 상향식 공천 룰을 확립했는데도 야당 인재영입이 더 크게 평가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어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열린 민주동지회 신년모임에 참석해 “이전에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으면 권력자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비굴하게 충성하고 돈 받치는 일을 했지만 이젠 다 없어진다”며 “정치개혁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고 상도동계 선배들 앞에서 강조했다.
당 안팎에서도 “김무성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못왔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공천 학살이나 밀실 공천같은 단어가 사라진 것만 해도 큰 성과라는 얘기다.
과거 새누리당 공천과정을 보면 상대 계파에 대한 ‘학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대 총선에선 친이계, 19대 때는 친박계가 각각 칼자루를 쥐고 ‘눈엣가시’를 제거했다. 19대 때는 무려 8가지 공천방식을 뒤섞은 뒤 사실상 공천심사위원회 입맛대로 후보를 정했다. 김 대표 본인도 공천 탈락 후 피눈물을 삼켰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권력 특성상 전략공천은 불가피한데 과거 공천학살의 희생자였던 경험에서 이같은 결단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공천실험이 저평가되는 데도 이유는 있다. 대구·경북(TK)을 발원지로 삼아 예비후보들이 ‘진박(眞朴)’ 마케팅에 나서면서 후보간 인물·정책 대결이 실종됐다. 상향식 공천이란 대의가 줄서기 경쟁으로 희석된 셈이지만 김 대표는 제동을 걸지 않았다. 또 오세훈·안대희 후보와 관련해 김 대표가 직접 ‘험지출마’ 중재에 나섰다가 머쓱해졌고, 야당 분위기에 휩쓸려 신인 6명 영입을 서둘러 발표했던 것도 스텝이 꼬인 장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사 초유의 실험이라는 김무성표 공천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선 몇 가지 필요조건이 있다.
먼저 철저한 경선 관리다. 전체 지역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한두곳에서만 부정 의혹이나 경선 불복 사례가 나와도 경선 전체의 투명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 비례대표 선발도 지역구 못지않게 투명해야 한다. 김 대표는 “당 대표지만 단 한석도 제 이름으로 추천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공모를 거쳐 국민배심원단에서 심사한다고 해도 최종 후보를 최고위원들이 결정한다면 ‘계파별 나눠먹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략적’ 공천의 압력과 유혹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야당 후보가 가시화되면 총선 승리를 이유로 당 일각에서 후보 재배치를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원유철 원내대표는 수도권 증구(增區) 지역에 새 인물을 전략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헌철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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