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도입된 전국 동시조합장 선거가 11일 치러진다. 이번 선거는 그동안 조합장 선거의 폐해를 없애고 공정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전국 동시 선거가 도입되면서 신선한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결국 ‘미완’으로 남을 전망이다.
전국 곳곳에서 후보들의 유권자 매수 행태가 여전했고, 공직선거와 달리 후보자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 ‘깜깜이 선거’라는 제도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번 동시조합장 선거에서 돈봉투 살포는 더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닐 정도로 지독한 고질병으로 나타났다. 경남 진주에서는 현직 조합장인 이모(55)씨가 조합원 2명의 집을 찾아가 고무줄로 묶은 현금 20만원의 금품을 돌리다 체포됐고, 충남에서는 지난 1월 한 농협 조합장 입후보자가 총 150여명의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에게 1인당 20만~100만원씩 총 6000여만원의 현금을 살포했다가 고발당했다. 지난 9일 경남 함안에서는 모 후보 측의 선거운동원이 같은 선거캠프 선거운동원에게서 170만원을 받아 조합원 13명에게 돌렸다가, 돈을 다시 회수해 경찰에 자수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
한 조합원은 “과거 조합장 선거기간만 되면 ‘개도 5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병폐가 심했다”며 “올해 선거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조금만 틈새가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는 불법 행태도 여전했다.
최근 경기 양평군 한 농협조합장 B씨는 음식점에서 만난 조합원 9명에게 각 1만원씩 9만원을 대리운전비로 지급한 혐의로 수원지검 여주지청에 고발됐다. 경기 여주 조합장 선거 후보자는 작년 12월 조합원이 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이트볼 모임에 43만원 상당의 철제 난로를 제공해 덜미가 잡혔다. 경기 용인에서는 한 후보자가 경로당 20개소에 기름 640만원 어치를 제공해 적발되기도 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9일 오전 현재 총 1326건의 조합장 선거에서 고발 132건, 수사의뢰 33건, 경고 510건 등 총 675건이 조치됐다. 이는 개별 조합장 선거가 이뤄진 지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이뤄진 총 2471건의 선거에서 집계된 고발 281건, 수사의뢰 195건, 경고 945건 등 총 1421건에 비해 비율상 비슷한 수치여서 동시선거가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지나친 선거운동 제약도 한계로 지적됐다.
선거운동원을 둘 수 있는 공직자 선거와 달리 조합장 선거는 입후보자들이 조합원 명부도 제공 받지 못한다. 또 선거 사무실은 커녕 선거 운동원도 둘 수 없고 배우자 조차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 단지 후보자 혼자서만 명함배부와 어깨띠,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지지호소문 게재, 전화 통화 문자메시지 전송이 전부다. 게다가 농축협 사무소를 비롯해 병원 ,종교시설 등 실내에서의 선거운동도 제한되고, 호별방문도 허용되지 않는다. 토론회나 연설회도 없어 자신의 정견을 발표할 기회가 없어 사실상 현직 조합장에게만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합원들 역시 입후보자들을 검증할 통로가 없는 셈이다. 일각에서 공직선거로 전환하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광주지역 조합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는 “조합원 접촉이 유리한 현직 조합장 출마자들은 집에서 전화를 돌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후보들은 누가 유권자인지도 모른채 거리에 나와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돈선거에는 무관용 원칙을 보여야 한다”며 “공청회나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후보자를 충분한 알릴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가 끝나고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제도 개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한필 기자 / 박동민 기자 / 지홍구 기자 / 최승균 기자 / 서대현 기자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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