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뛰는 금리에 부동산 시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그야말로 올스톱이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착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시장이 좀처럼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대대적인 규제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크게 두 축으로,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는 한편, 분양시장과 관련한 규제를 크게 완화했습니다.
먼저, 서울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역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에서도 해제했고, 분양계약 시점부터 수도권은 최대 10년, 비수도권은 최대 4년간 팔 수 없었던 전매금지 기간을 수도권은 최대 3년, 비수도권은 최대 1년으로 단축하기로 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을 분양받았을 때 부과되는 실거주 의무(입주 가능일로부터 2~5년)도 폐지되고, 이미 의무가 부과된 경우에도 소급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개정된 전매행위 제한기간 규정. 자료: 국토교통부
이뿐 만이 아닙니다. 분양가 12억 원까지만 중도금대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던 기준도 없애기로 했고, 수도권과 광역시 등에서 1주택자가 청약에 당첨됐을 때 기존에 보유하던 주택을 입주가능일로부터 2년 안에 팔아야 하는 의무도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집이 있는 사람도 미계약 물량에 대한 무순위 청약, 이른바 ‘줍줍’이 허용됩니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예고한 대로 전부 시행이 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대책들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개정사항이어서 정부가 자체적으로 조치를 마무리했지만,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 소급적용은 주택법 개정사항이라 국회에서 법이 개정돼야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갭투자로 인한 전세사기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난 상황에서 갭투자를 부추길 수 있는 거주의무 폐지는 위험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관련 법안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오는 10일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재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라는데, 통과는 불투명합니다.
주택법 제57조의2 1항. 자료: 국토교통부
전매제한은 풀렸지만 실거주 의무는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런 분양권을 매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현행법상으론 주택법 위반이어서 적발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됩니다. 주택법 개정이 늦어지면 최악의 경우 형사처분까지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달 7일 분양권 전매제한을 완화하는 '주택법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4월 서울시의 분양권 거래건수는 이달 6일 집계로도 35건까지 증가했습니다. 1, 2건, 심지어 한 건도 없었던 이전과 비교하면 규제 완화 이후 수십배가 늘어난 겁니다.
정부 발표에 맞춰 행동했는데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면 누가 정부 대책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이런 선례가 계속 쌓인다면 정부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발표해도 국민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장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특히, 자신들이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법 개정 사항이어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변명은 국민들이 더는 이해해주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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