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쯤 국토교통부에서 재건축과 관련한 중요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첫 관문에 해당하는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을 시작으로 주택가격이 치솟자 지난 2018년 안전진단 통과가 어렵도록 기준을 대폭 강화시켰습니다. 평가항목 중 비중이 20%였던 구조 안전성을 50%로 크게 높이고, 주차대수나 층간소음 등 주거환경 비중을 40%에서 15%로 대폭 낮췄습니다. 그리고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국토안전관리원 등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를 받게 했습니다. 그 결과 18년 2월에 기준이 강화되기 전 34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139개 단지가 안전진단을 통과했었는데, 개정 이후에는 56개월간 고작 21건에 그쳤습니다. 재건축 단지 주민들 사이에선 건물이 무너져야 안전진단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가 나왔었죠.
정부는 이번 개편에서 구조안전성 비중을 50%에서 30%로 낮추고, 대신 주거환경을 15%에서 30%로 높였습니다. 조건부 재건축 판정 범위도 줄였죠. 국토부 시뮬레이션 결과 개편 전 기준에서 유지보수 판정을 받아 재건축이 어려웠던 25개 단지 중 14개 단지는 개편 후 기준을 적용하면 재건축이 가능하게 된다고 합니다.
재건축 주민들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굳건했던 안전진단 문턱이 드디어 낮아진 건 어떤 완화책을 내놔도 집값이 들썩일 수 없는 부동산 시장 상황이 결정적인 이유인 듯합니다. 6개월 넘게 하락세를 이어간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달에 한국부동산원이 월별 시세 조사를 시작한 2009년 12월 이후 최대 월간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실제 안전진단을 완화해도 목동이나 상계동 등 수혜 아파트에 여전히 매수 문의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안전진단 뿐만이 아닙니다.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도 재건축 계획을 속속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강남 재건축의 상징으로 불리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10월 20일에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고,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재건축 대상인 시범아파트도 11월 7일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됐습니다. 11월 9일에는 목동 14개 단지 전체의 지구단위계획이 통과됐고, 지난 달 21일 대치미도아파트, 지난 16일에는 개포주공5단지와 잠실우성4차, 가락프라자 등 5개 사업장 5,256세대가 건축심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이미 기존 집들로 촘촘한 서울은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정비 사업이 아니면 신규 주택을 공급할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공급, 정확하게는 입주가 줄면 신축 아파트 전세가격이 상승하면서 전체 시장이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서울 집값이 안정되려면 재건축·재개발이 한 시점에 몰리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재건축·재개발은 사업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는 특성상 택지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식보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구역 지정부터 입주까지 '초특급' 스피드로 진행돼도 10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단기에 공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섣불리 제도를 건드릴 경우 일정 시점에 아파트 입주가 급감하거나 반대로 몰리는 상황이 벌어져 주택 가격이 급등락하는 부작용이 벌어질 우려가 큽니다. 그래서 제도 강화도, 완화도 아닌 '안정적인' 운영을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
재건축 사업단계. 자료 : 국토교통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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