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차림의 '쿨한 트레이더' 이미지로 주목
정계 로비하며 가상화폐 규제론 동조
정계 로비하며 가상화폐 규제론 동조
최대 500억 달러(약 66조 2천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남기고 회사를 파산시킨 샘 뱅크먼-프리드(30) FTX 창업자의 실체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1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인계 골든보이 뱅크먼-프리드는 어떻게 악당이 되었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뱅크먼-프리드의 이력과 인격, 경영 스타일을 분석했습니다.
뱅크먼-프리드는 비트코인 급등 시기인 201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한 임대주택에서 암호화폐 투자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를 창업했고, 이때 벌어들인 자금으로 2019년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를 세워 자체 코인 FTT를 발행했습니다.
탄탄한 기술과 뛰어난 사용자환경(UI)을 갖춘 FTX는 경쟁업체를 제치고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는데, FTX가 올해 초까지 끌어모은 자금은 약 320억 달러(약 42조 2천억 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FTX가 업계 1위 바이낸스를 추격하기 시작하면서 뱅크먼-프리드의 공격적 전략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뱅크먼-프리드는 자신의 '쿨한 트레이더' 이미지를 활용해 FTX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헐렁한 반바지 차림을 브랜드화했고, 이는 각종 행사장에 등장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WSJ는 이 전략으로 아시아 최대 국부펀드 싱가포르 테마섹 등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FTX는 홍보 부문에 상당한 돈을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미국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 홈구장에 대한 19년간의 명명권을 1억 3천500만 달러(약 1천780억 원)에 사들여 구장 이름을 'FTX 아레나'로 바꾸는가 하면, 올해 2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슈퍼볼 광고를 사들였습니다.
경쟁사 바이낸스는 FTX의 이같은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바이낸스는 보유 지분 약 20%를 매각했으며, 바이낸스 자오창펑(45) 최고경영자(CEO)는 뱅크먼-프리드의 행보를 비꼬기도 했습니다.
바이낸스는 "우리는 몇 달 전 슈퍼볼 광고나 경기장 명명권, 대형 스폰서 계약 등을 어렵게 거절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실제로 FTX의 외연은 급성장했지만, 내실은 다지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WSJ 보도에 따르면, FTX 직원은 "회사가 너무 빨리 커지면서, 핵심 사업영역과 너무 먼 곳까지 확장되는 것에 대한 우려감이 팽배했다"며 "뱅크먼-프리드가 중요한 거래를 할 때 외부 조언을 참조하지 않은 채 소수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였다"고 설명했습니다.
WSJ는 "외부에 비친 모습과 달리 뱅크먼-프리드가 실제로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종종 모욕적 언어를 일삼기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출생 배경 덕에 현지 가상화폐 업계에서 간판으로 떠 오른 그는 자오창펑이 중국 출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내뱉었습니다.
미국 규제 당국이 가상화폐 시장을 조여오자 뱅크먼-프리드는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으려는 듯 워싱턴 정가를 상대로 로비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미 하원 청문회에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의회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었고,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권의 최대 후원자 순위 6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면 바이낸스는 사실상 중국 기업이 아니냐는 의심 속에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 대상이 됐는데, 그런 자오창펑을 향해 뱅크먼-프리드는 "그 사람도 워싱턴에 갈 수 있지?"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글은 삭제됐지만, 자오창펑은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규제를 피해 FTX 본사를 바하마로 옮긴 그는 현지 당국자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회사의 역량을 과시하며 'F'로 시작하는 비속어를 수시로 사용해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가상화폐 거래의 핵심 특성 중 하나인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옹호했다는 점도 업계에서 미운털이 박히는 요인이 됐습니다.
지난 7일 자오창펑은 FTX가 발행한 토큰 FTT를 처분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는데, 이 발표는 FTX 유동성 위기에 기름을 부었고 가상화폐 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뱅크먼-프리드는 직원들에게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 이는 나 혼자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CEO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오서연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yyoo98@yonsei.ac.kr]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