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내국인들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진 반면, 외국인들의 국내 부동산 매수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주춤했던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수량이 국내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된 올해 들어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규제나 세금을 회피하면서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는 외국인들 사례가 알려지면서 내국인들은 '역차별'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1일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외국인 국내 건축물 거래량은 1985건으로 전월 거래량(1537건)보다 약 30% 증가했다. 올해 최대치이며 월간 거래량 기준으로 작년 4월(2177건) 이후 13개월 만에 최대치다. 외국인들의 지역별 건축물 거래량은 서울의 경우 강서구가 54건으로 가장 많았다. 한달 전 거래량(15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중구(12건→18건) 구로구(18건→22건) 강남구(22건→24건) 등지도 외국인 거래량이 전월대비 증가했다.
경기도에서는 부천(66건→98건)과 안산(67건→90건), 용인(62건→78건), 평택(47건→69건), 화성(31건→47건), 수원(34건→46건)에서 외국인 부동산 매수량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외국인들의 주택 매수가 증가하면서 외국인 보우 집에 세들어 사는 내국인도 빠르게 늘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올해 5월 전국 등기소와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임대차계약 중 임대인이 외국인인 계약은 2362건으로 관련 통계 집계 후 처음으로 월간 기준 2000건을 넘었다. 직전 최다였던 올해 4월(1554건)보다 52% 증가한 수준이다. 올해 1~5월 외국인 집주인과의 전월세 계약은 총 8048건으로 전년동기(4719건)와 비교해 70% 이상 늘어났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서는 내·외국인간 부동산 규제 역차별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다. 2020년부터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 구매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내국인과 달리 지난해 한 중국인은 89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외국 은행에서 전액 조달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내 아파트를 사들이는 외국인 상당수는 중국 국적자들이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중국인의 국내 아파트 매수 건수는 3419건으로 전체 외국인 거래의 60%를 차지했다. 이들이 사들인 아파트 가운데 절반 이상인 1879건이 수도권 소재였다.
문제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내·외국인, 특히 중국 국적자와의 역차별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잇단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부동산 등 내수 경기침체 둔화를 고려해 금리인하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불법 외국인 거래 다수 포착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외국인 부동산 투기 대응을 강화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오는 9월까지 법무부, 국세청, 관세청 등과 합동으로 외국인의 투기성 부동산 거래에 대한 기획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불법 거래가 의심되는 사례가 이미 다수 포착됐다.
8살짜리 중국 어린이의 경기도 아파트 구매 사례와 미국 청소년의 서울 용산 27억원짜리 주택 매입 사례 등이다. 또 40대 미국인은 수도권과 충청권에 주택 45가구를 소유하고 있었고, 학생비자를 받고 온 중국인 여학생은 인천에 빌라 2가구를 매입해 매달 월세를 90만원씩 받는 사례도 확인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지난 1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원희룡TV'에 '외국인 부동산 투기 실태와 원천봉쇄 대책'이라는 제목의 12분 26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원 장관은 "외국인 자체를 차별하거나 금지해선 안된다"면서도 "금융규제나 세금을 회피하면서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는 외국인이 있고, 내·외국인 규제 역차별도 발생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외국인 거래가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점 네 가지(외국인 부동산 관련 통계 미비·외국인 세대파악 곤란·대출규제 내국인 역차별·외국인 불법임대)를 꼽았다.
원 장관은 외국인의 매매 거래 현황, 임대·임차인 현황을 비롯해 유형별·국적별·구입목적별 등 정확한 양질의 통계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금융과 세금 제도(종합부동산세 등)의 경우 '1가구 1주택' 등 기본적인 단위가 가구인데, 외국인은 개인으로만 등록·파악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은 금융·조세규제 등에서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임대수익을 올리면 여기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하지만, 외국인은 세금을 피하고 행정적 지도·감독을 회피하는 등 문제점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대포통장(차명통장)'을 쓰는 것처럼 부동산시장에서는 '대포집주인'도 있다"면서 "외국인이 집 명의만 빌려주고 향후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득을 챙길 수 있으면 징역조차 대신 살려고 하는 사람을 내세워 범죄 수준으로 부동산 거래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원 장관은 "외국인 부동산 거래와 관련해 전수조사를 하고 엄격한 통계를 작성하겠다"며 "과학적 데이터에 기초해 외국인 투기는 막고, 권리를 보호받아야 하는 선량한 외국인에겐 국제적 평등 원칙에 따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이나 불법임대사업은 국내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외국인 가족 호적 등 신고 의무화를 통해 이를 위반하면 그 자체로 제재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국인은 까다로운 대출규제와 소득증명에 시달리는데 외국인이라고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관련 조사를 할 권한을 정부가 갖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캐나다, 호주 등 외국 사례를 전부 연구해 외교적인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외국인 투기를 차단할 수 있는 정책을 내부적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투기는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철퇴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청년들은 집값이 올라 신음하는데, 일부 외국인은 금융규제나 세금을 회피하면서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는 사례가 있다. 이는 명백한 역차별이다. 이걸 방치하면 국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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