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휴가 갔다가 통장 거덜나겠네요. 집에서 수박이나 먹으며 쉴까 합니다."
여름 휴가철이 목전으로 다가온 가운데 고유가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외식물가는 물론, 숙박비와 항공권 가격까지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국내외 여행 등 휴가를 포기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2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달부터 국제선에 유류할증료 19단계를 적용한다. 지난달보다 2계단 오른 것인데 2016년 5월 유류할증료 거리 비례구간제가 도입된 이래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유류할증료가 기준거리(편도) 비례별로 최고 29만3800원까지 부과된다.
항공기 운임에 포함되는 유류할증료가 오르는 건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들썩이고 있어서다. 본격 휴가철인 내달에는 국내선 유류할증료 역시 1만9800원으로 전월보다 2200원 오른다. 2008년 9월 금융위기발(發) 국제유가 폭등 당시 최고치 1만7600원을 넘어선다.
유류할증료가 오르면서 소비자부담도 연일 가중되고 있다. 이달 초 현충일 연휴 기간 김포~제주를 왕복한 소비자 A씨는 "저가항공사 일반석인데도 23만원이 들었다"며 "항공편이 부족해서 다른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항공권뿐만이 아니다. 거리두기 해제로 소비자들의 외출이 늘어나자 호텔 등 숙박업계도 가격을 줄인상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와 기장 등 바닷가 인근의 특급호텔들은 성수기 때 가장 저렴한 오션뷰(바다 전망) 객실을 100만원 안팎에 판매 중이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 B씨는 "부르는 게 가격인데 해마다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라며 "올여름은 거리두기 해제 후 첫 휴가철인 만큼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호텔들도 모처럼 특수를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반면 소비자들은 이 같은 숙박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최근 가족들과 부산을 방문했다는 소비자 C씨는 "호텔들이 너무 비싸 1박에 5만원인 관광용 모텔에 묵었는데 건물이 시끄럽고 낡아 불편했다"며 "숙소를 옮겨볼까 고민도 했지만, 가격을 보고 이내 포기했다"고 말했다.외식시장에서도 물가 상승 조짐이 뚜렷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7.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과 4월 6.6% 오른 데 이어 또 상승한 것이다. 지난 1998년 3월(7.6%) 이후 24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통계청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39개 외식 품목 중 가격이 인하된 건 없었다.
갈비탕의 상승 폭이 12.1%로 가장 높았고 ▲치킨 10.9% ▲생선회 10.7% ▲자장면 10.4% ▲김밥 9.7% ▲라면 9.3% ▲쇠고기 9.1% 순으로 가격이 올랐다.
식품업계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옥수수 등 사료용 곡물가가 오른 점과 해외 각국이 식자재 수출을 제한한 여파가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3~6개월가량 원자재를 비축해뒀던 대형 유통기업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올해 4월(118.59)보다 0.5% 높은 119.24(2015년 수준 100)로 집계됐다. 상승 폭이 4월(1.6%)보다 줄었다고 하나, 올해 1월 이후 5개월째 오름세를 보였다.
생산자물가는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도매 물가를 의미한다. 소비자물가지수의 선행지표로 활용되는데 대개 생산자물가지수가 오르면 한 달 정도 뒤 소비자물가가 덩달아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휴가철이 시작되면 소비자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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