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위해 국회 논의를 앞두고 지난해말 입법예고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재정수지 기준, 광범위한 예외조항, 재정준칙의 실효성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고심해 만들었다는 재정준칙 한도 계산식이 오히려 확장적 재정 정책을 용인하는 근거가 될 개연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한국법제연구원의 '국가채무 및 재정수지 관리 법제의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홍종현 경상대 교수는 "재정준칙을 활용하는 국가 중에서 채무비율과 재정수지 지표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정준칙을) 곱셈식으로 하는 문제점은 정부가 국가채무비율 60%를 마지노선으로 삼아 초과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2025년부터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는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기재부는 두 지표가 기준선을 넘나들 수 있도록 산식을 만들었다. 국가채무비율을 60%로 나눈 수치와 통합재정수지를 -3%로 나눈 수치를 곱한 값이 1을 넘지 않도록 한도를 설정한 것이다.
홍 교수는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하더라도 통합재정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면 산식 결과값은 1보다 작게 되고 재정준칙을 위배하지 않게 된다"며 "설령 준칙을 위반해 한도를 초과했을 때도 재정건전화 대책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을 뿐 강제성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개정안에 재정준칙의 예외조항으로 열거된 3가지 사유가 현행 국가재정법의 추경 편성 요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 추경 편성이 연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정준칙의 적용이 사실상 배제되고,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최근 경기 악화로 추경 편성이 연례적으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준칙 적용)예외가 상시화돼 재정준칙 도입 취지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며 "예외조항 요건을 보다 구체화하고, 예외 적용 후 다시 준칙으로 복귀할 수 있는 이행규정 등이 제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보고서는 재정준칙은 시행령보다 법률로 규율해 구속력을 담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기존에 제기됐던 의견과 함께 재정수지준칙의 기초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포함해 재정 착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통합재정수지를 적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행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한국의 경우 재정준칙 이행 여부에 대해 독립적인 감독을 할 수 있도록 의회에 재정위원회를 두든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행정부 안에 독립 행정청을 설치하고 감사원의 감시를 받는 형태를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박형수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연세대 객원교수)은 "재정준칙 도입의 취지는 좋지만 세입 확충과 세출 조정 등 준칙을 준수하기 위한 방안들이 뒤따르지 않아 전문가들이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며 "있으나 마나한 정부안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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