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이차전지 영업비밀·특허 분쟁,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제제(일명 보톡스) 균주 출처 분쟁이 각각 벌어지고 있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 관련 진흙탕 싸움이 또 시작됐다.
ITC는 기업들 사이의 분쟁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양측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증거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증거개시(Discovery)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끼리 분쟁이 일어나도 ITC에서 소송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ITC는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 제제 나보타의 미국 수출을 10년동안 금지하라는 예비판결에 대한 대웅제약 측의 이의 제기를 지난 21일(현지시간) 일부 받아들여 예비판결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을 놓고도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입장이 엇갈렸다.
이의를 제기한 대웅제약 측은 메디톡스와의 ITC 소송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법리적인 쟁점 뿐만이 아니라 균주와 제조공정의 도용에 대한 사실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예리적으로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이는 대웅제약이 이의 신청서에서 주장했듯이 ITC 예비결정이 증거와 과학적 사실을 외면한 편향적인 결정이었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예비판결에 대한 재검토를 알리는 ITC 통지문에는 '최종 초기 결정(final initial determination·예비판결)을 부분적으로 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대웅제약은 전날 배포한 보도자료에 "전면 재검토"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 관계자는 "전면 재검토라고 말한 것은 대웅제약 측이 이의 신청한 대부분의 항목들이 모두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메디톡스는 이번 재검토 결정이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회사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 ITC 위원회는 1명이라도 이의 제기를 받아주기로 결정하면 재검토를 한다"며 "이를 통해 예비판결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학적 근거와 증거들을 바탕으로 ITC 행정판사가 올바른 판결을 내린 만큼 ITC 위원회에서도 궁극적으로 예비판결 결과를 그대로 채택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이차전지 영업비밀·특허 소송 관련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LG화학이 '특허 소송의 대상인 SK이노베이션의 특허가 LG화학의 선행기술이며 SK이노베이션이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을 제재해달라는 요청서를 지난달 ITC에 제출한 데 대해, SK이노베이션은 반박 의견서를 ITC에 제출했다며 LG화학 측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회사 측 포렌식 전문가의 분석 결과 (LG화학이) 삭제했다고 주장한 주요 문서들은 한 건도 빠짐 없이 정상적으로 보존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백업 파일을 포렌식 목적으로 LG화학에 제공했는데도 LG화학이 팩트를 왜곡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G화학 측은 "의견서를 제출한 것을 마치 LG화학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진 것처럼 오도하지는 말았으면 한다"며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소송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이번 배터리 분쟁의 본안 소송이라고 할 수 있는 ITC에서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증거 인멸 혐의가 인정돼 지난 2월 조기패소 당한 바 있다. 이후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재검토 절차를 밟고 있으며, 최종 판결은 다음달 5일 나올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영업비밀과 관련한 분쟁이 생겼을 때 ITC에서 소송을 벌이는 이유는 '증거개시(Discovery) 프로그램' 때문으로 보인다. 증거개시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소송 상대방이 가진 모든 사건 관련 자료를 재판부의 승인을 거쳐 대리인을 통해 모두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도 포함된다. 대리인들은 증거개시 프로그램에 의해 접근한 자료에 대해 의뢰인에게도 누설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으며, 이를 어기면 상당히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한경우 기자 case10@mkinternet.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