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간단히 기구를 조작해 세균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키트가 개발됐다. 기존에 수일이 걸렸던 감염성 질환 진단을 1시간 이내로 단축하면서도 높은 진단 정확도를 보여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 오지 등에서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윤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연구단 그룹리더(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진은 세균 감염성 질환을 1시간 내로 진단할 수 있는 수동 진단키트인 진단용 스피너를 개발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 19일자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베어링을 중심으로 본체를 돌리는 장난감 '피젯 스피너'에 착안해 손으로 돌리는 미세유체칩을 만들었다. 손가락 힘으로 기구를 돌리면 병원균이 농축되면서 세균 분석과 항생제 내성 테스트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진단용 스피너에 소변 1㎖를 넣고 1~2회 돌리면 5분 안에 필터 위에 병원균이 100배 이상 농축된다.
조 그룹리더는 "필터 위에 시약을 넣고 기다리면 살아 있는 세균의 농도를 색깔에 따라 육안으로도 판별할 수 있고 세균의 종류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균 검출 후에는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는지도 확인 가능하다. 진단용 스피너에 항생제와 섞은 소변을 넣고 농축시킨 뒤 세균이 살아 있는지 여부를 시약 반응으로 확인하면 된다. 세균 검출과 항생제 내성 확인에는 각각 45분이 걸린다.
연구진은 인도 티루치라팔리 시립병원에서 자원자 39명을 대상으로 병원의 배양 검사와 진단용 스피너 검사를 각각 진행해 세균성 질환을 진단, 비교했다. 그 결과 진단용 스피너로 세균 감염 여부를 1시간 이내에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는 배양에 실패한 경우까지 정확히 진단해 냈다. 이에 따라 현지의 일반적인 진단·처방 방식으로는 59%에 달했을 항생제 오남용 비율을 0%로 줄일 수 있음을 보였다.
공동 제1저자인 아이작 마이클 연구위원은 "진단용 스피너는 개당 600원으로 매우 저렴하고 비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조 그룹리더는 "특히 항생제 내성검사는 고난도인데다 장비를 잘 갖추고 있는 실험실에서만 가능했는데, 이번 연구로 빠르고 정확한 세균 검출이 가능해져 오지의 의료 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