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해동 엘본더테이블 총괄셰프(34)의 이력은 이색적이다. 노 셰프는 특정 분야의 인재와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특성화고등학교가 국내에 생기기 시작한 2000년대 초 조리과학특성화고를 들어간 '특성화고 1세대'로, 해외 유수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수련을 마친 뒤 국내외 유명 레스토랑의 러브콜을 뒤로 하고 대기업을 택해 CJ에서 메뉴 R&D(연구개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지난 2017년부터 엘본더테이블 총괄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가로수길 대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중 하나인 엘본더테이블은 개점 시기부터 7년 동안 최현석 셰프가 총괄셰프로 있던 곳이다. 최 셰프가 떠난 뒤에는 1년여 동안 총괄셰프 자리가 비어 있었을 정도로 차기 총괄셰프에 공을 들인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 8일 엘본더테이블 가로수길 본점에서 만난 노 셰프는 최 셰프의 명성 탓에 초반 부담스럽지 않았냔 질문에 "긴장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도전을 가장 가치있게 여긴다. 엘본더테이블이 당시 변화에 대한 니즈(요구)가 강했기 때문에 잘 맞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선택했다"고 밝혔다.
유행에 민감한 퀴진 레스토랑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미국부터 아시아에서 최고의 컨템포러리 유러피안 퀴진을 맛볼 수 있다는 홍콩, 영국, 호주 등에서 수련 생활을 한 노 셰프는 한국 주방이 가장 위계질서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바꿔보고 싶어 도전한 곳이 엘본더테이블이었다. 엘본더테이블 본점에 들어서자마자 로비 1층에 보이는 대형 사진 속 노 셰프와 팀원들의 함박웃음이 그의 요리 철학을 증명한다.
노해동 총괄셰프[사진 제공 = 엘본더테이블]
노 셰프는 "영국의 주방은 군기가 세기로 유명하고, 호주는 셰프들의 근무시간이 16시간에 달한다. 도저히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는 입문자들이 수두룩한 악명높은 곳"이라면서 "하지만 서비스타임 외에는 자유로운 분위기라 형제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다수의 한국 주방은 위계질서가 너무 강해 윗사람에게 질문도 제대로 못한다. 주방과 홀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자 첫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그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일하러 가는 길이 즐거워야 제대로 된 직업과 직장이라 여긴다. 서로 어색한 주방 직원과 홀 직원이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총괄셰프 면담시간을 늘렸다.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직원들과 레스토랑을 찾은 고객 모두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노 셰프는 "파인다이닝을 표방하는 만큼 이 같은 분위기가 주방에서부터 나와야 한다"며 "음식을 맛있게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고객은 레스토랑에 잠시 머물다 가지만 직원들은 하루종일 이곳에 있다. 근무자들의 기분과 태도를 바꿔야 레스토랑이 맛 이외의 것까지 고객에게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대기업의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주방으로 끌어오고자 한 그의 생각이 주효했다. 그는 CJ푸드빌에서 R&D연구원으로 2년6개월 정도 근무했다. 처음 CJ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땐 요리와 레스토랑밖에 모르던 그에겐 너무 생소한 '직장생활'이었지만, 이 역시 새로운 도전으로 여겨 수락했다.
노 셰프는 "주방에만 있으면 매출이나 마진 같은 숫자에 약해진다.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국내 외식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당시의 경험은 홍연어 같은 엘본더테이블 HMR(가정간편식) 연구나 백화점 메뉴 개발에 여전히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고객과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고민하다 애플리케이션 7pmlife 활동을 시작했다. 이 플랫폼은 요가, 홈스타일링, 쿠킹클래스 등 퇴근 이후의 삶을 지원한다. 주방 셰프가 아닌 교육자로 고객을 만나 조리법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요리를 대하는 법과 음식의 가치 등을 전한다.
그는 "쿠킹클래스를 준비하면 한 번 더 메뉴를 고민하고 쉬운 조리법을 개발하게 돼 스스로에게도 큰 도움과 자극제가 된다"며 "작은 것일지라도 의미있는 도전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쿠킹클래스엔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 많다. 이 분들에게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엘본더테이블]
국내 파인다이닝이 위기라고 하지만,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단 게 노 셰프의 생각이다. 경쟁력 있는 브랜드와 레스토랑만 살아남아 경쟁하고 세계로 진출하는 게 순리라고 그는 강조했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메뉴 개발을 계속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레스토랑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그는 "아직까지 국내보단 해외에서 셰프가 더 환영받고 존중받는 직업이다. 의식주랑 관련한 일이다 보니까 자부심도 높은 직업군"이라며 "앞으로 더 잘 되는 레스토랑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곳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 한국의 주방 문화와 셰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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