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미국 문명의 세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40년간 지속된 동서냉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초강대국 지위에 올랐다. 미국 문명의 원동력은 '군·산·학(軍·産·學)' 시스템이었다. 국가 R&D의 50% 이상을 60년 넘게 국방에 투자했다. 군과 산업계, 학계 및 연구기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시너지를 내는 '기획된 창조력'이 바로 군산학 시스템이다. 인터넷, 기상위성, 로봇, 레이저, 휴대전화, 컴퓨터 그래픽 등 현대 산업사회를 이끈 핵심 기반 기술들이 군산학 시스템에 의해 태어나고 상용화됐다. 미국은 군산학 시스템의 성공을 위하여 몇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기초연구는 적은 예산을 장기간 주어 연구기반을 튼튼히 한다. 둘째, 기초연구 이후 실용적인 기술 탄생 가능성이 보이면 즉각 수십 배에 달하는 예산을 집중 투입한다. 셋째, 검증된 기술은 민간에게 이양한다.
미국은 베이돌법(1980년), 연방기술이전법(1986년)을 제정하여 연방정부 연구기관에서 개발된 기술이 민간에게 원활히 이양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지원했다. 그 결과 지금도 NASA에서만 매년 2000여 건의 기술이 이전되며, 1600여 건의 신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한다. 이렇게 국방 R&D 결과로 만들어진 기반기술들을 기초로 미국이 세계 문명을 이끄는 막대한 기술이 쏟아졌다. 로봇, 네비게이션, 무선청소기, 핸드폰용 카메라, 라식수술, 접촉식 체온계, 인공심장, 어군탐지기, 청소로봇, 전자레인지 등이 미국 정부의 주도로 기획된 창조력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20세기 미국이 우주로 가는 목표를 기초로 '군·산·학' 협력을 창조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신문명 미래도시를 창조하는 '시·산·학(市産學)'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 미래도시인가. 근·현대 산업혁명이 만든 지금의 대도시는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5%가 전세계 24%의 에너지 자원을 소비한다. 전 지구인이 미국인처럼 살면 지구가 3.9개가 필요하다. 1900년부터 1999년까지 100년간 미국의 시멘트 사용량은 45억 톤인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중국은 60억 톤의 시멘트를 사용했다. 이대로 간다면 지구의 미래는 없다.
특히 미래도시 산업은 한국이 세계 문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산업 분야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중공업·가전· 정보 통신 인프라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도시 건설 경험과 노하우도 풍부하다. 앞서가는 일본, 추격하는 중국에 대한 공포는 이젠 그만 강조해도 좋다. 대신 한국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그것 없이는 못 사는 것을 창조하자.
[이광재 매일경제신문 명예기자 (여시재 부원장) / 정리 =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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