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사상 처음으로 서로 다른 두가지 유형의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해 축산농가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구제역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 이날 가축방역심의회를 열고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구제역 공포가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가뜩이나 침체돼 있는 내수 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9일 농림축산식품부는 4단계로 돼 있는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제역 발생으로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것은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2010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현재 A형과 O형을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O+A'형 백신 재고가 부족한 상황에서 경기 연천에서 발생한 A형 구제역의 경우 유전자 분석중이어서 지역형(통상 국가별)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역형이 확인돼야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O+A'형 백신이 방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지난 2010년 A형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을 때라 A형과 관련한 정보가 많지 않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O+A형 백신이 연천에서 검출된 A형 바이러스 매칭 정도가 높아 바로 효능을 나타내면 좋겠지만 일단 A형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 결과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 메리알사에서 수입하는 'O+A'형 백신의 경우, 보유 물량이 190만마리분 정도로 일제접종 대상인 소 280만마리에 놓기에는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당국은 A형 구제역에 대해 보유 중인 O+A형 백신과의 적합성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O형 백신만 우선 접종하기로 했다. 다만 A형으로 확진된 연천 지역 내 소에 대해서는 시급성을 고려해 유전자 분석 결과와 상관없이 보유하고 있는 O+A형 백신을 접종한다. 농식품부는 영국 메리알사 측에 O+A형 백신 물량 확보를 긴급 요청해놓은 상태다. 수입이 성사되면 최대 일주일가량 걸릴 전망이다.
O형뿐 아니라 A형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한 만큼 소와 달리 O형에 대한 백신만을 접종하고 있는 돼지의 감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돼지가 A형에 걸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국내나 해외에서 돼지에 A형 구제역이 발생한 사례는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면서도"돼지에 대해서도 A형 백신을 놓는 걸 포함할 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역 당국이 돼지에 A형 백신 접종까지 놓은 걸 고민하는 이유는 일단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돼지가 소보다 구제역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돼지의 경우 소보다 훨씬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를 빽빽하게 가둬 키우는 '밀식 사육'을 해 한 마리가 걸리면 농장 내 모든 돼지들에게 순식간에 번지는 경우가 많다.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돼지의 항체 형성률이 소보다 떨어지는 것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당국이 밝힌 전국 돼지 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75.7%로, 소 농가의 97.5%보다 크게 떨어진다. 10마리의 돼지에 백신을 접종해도 2~3마리에서는 구제역을 견딜 만한 수준의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과거 감염 사례만 봐도 구제역 피해는 대부분 돼지에 집중됐다.
다만 검역당국이 항체형성률을 조사할 때 소 농가는 10%의 표본을 뽑아 통계 예찰을 하지만 돼지는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1년에 두 번씩 구제역 검사를 해왔다. 특히 표본 농가에서 무작위 선정된 1마리만 검사를 하는 소와 달리 돼지는 농가당 13마리를 검사하고 항체 형성률이 60%를 넘지 않으면 열흘 이내에 다시 16마리를 대상으로 검사를 시행해 기준에 미달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소 농가보다 훨씬 철저하게 검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돼지를 키우는 축산 농가들은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다.
보령에서 돼지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장주는 "작년에도 구제역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살았는데 올해도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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