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을 대비해 즉각 백신을 제조할 수 있는 ‘항원뱅크’를 만든다. 이번 H5N6형 AI가 맹위를 떨치자 이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백신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고병원성 AI가 국내에서 발생한 지 13년 만에야 항원뱅크를 설립하는 것이어서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미 H5N6형의 종독주(Seed Bank)를 확보해 구축해놨으며 긴급 상황에 대비해 백신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항원뱅크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백신은 보통 총 3단계를 걸쳐 만들어지는데 종독주(백신 후보주)와 항원(종독주에서 바이러스를 만든 것, 냉동보관) 을 거쳐서 백신이 만들어진다. 이에 따라 항원을 만들겠다는 발표는 사실상 백신 개발에 착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아무리 빨라도 항원을 만드는데 3개월이 걸려 실제 백신 투입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4월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올겨울 백신 사용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백신 투입을 기정 사실화하는데에는 선을 그었다. 백신 투입이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백신 투입 시 단기적으로는 내성을 기를 수 있지만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 위험이 높다. 특히 이같은 변종이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AI 백신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변이된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생성되고 있어서 ”며 “인체 감염사례로 사망자가 보고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실제 검역본부와 학계 전문가에 따르면 세계동물기구(OIE) 기준으로 AI 바이러스 단백질인 ‘H’는 최대 18가지, ‘N’은 최대 11가지가 있다. 이론상으로 총 198가지의 AI 바이러스가 조합될 수 있다.구제역의 경우 바이러스 종류가 7가지여서 백신이 모두 개발됐지만, AI의 경우 백신 개발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다.
백신을 투입하면 AI 청정국 지위도 상실된다. 국제기구에서는 돼지 구제역에 대해서는 백신 사용을 허용하지만 고병원성 AI에 대해서는 사용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백신 투입보다는 살처분에 주력하고 있다”며 “보통 고병원성 AI의 경우 대부분 겨울철새가 돌아감과 동시에 상황 종료가 되곤 한다. 백신 개발이 일러야 4월에 가능할 것으로 보여 상황을 지켜본 후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항원뱅크 구축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미국은 5000만마리 이상을 살처분 하고 난 후 백신 사용을 검토해 올해 6월에 항원뱅크를 구축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다만 2003년 고병원성 AI가 국내에 첫 상륙하고 13년이 지나서야 항원뱅크를 정식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정부의 그간 인식이 너무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허주형 한국동물협회 협회장은 “예방 차원에서 미리 만들었어야 하는데 지금 와서 항원뱅크를 만드는 것이 문제”라며 “국내 방역시스템이 초기 발견 및 조치에 주력하기보다는 기다렸다가 나중에 강하게 대처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사전적인 예방시스템으로 방역체계를 바꾸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백신 투입’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기 위해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우선 방역당국은 AI 피해가 주로 발생하는 산란계 종계농장을 중심으로 방역관을 1명씩 투입해서 실시간으로 예방 및 소독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방역관은 중앙에서 지시하는 사항 등을 신속하게 점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AI 확산을 막아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산란계 농장 내 알 이동을 금지시키고 알 운반 차량에 대한 세차증명서 휴대를 의무화하는 등 ‘지역’을 넘나드는 행위를 관리하고 있다.
[서동철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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