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공백 사태가 두달째 이어지면서 내수활성화 등을 목표로 추진하던 경제 정책마저 잇따라 좌초 위기에 몰리고 있다. “정치적 혼란을 이유로 중요 경제 현안들마저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면세점 특허기간을 종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관세청법 일부개정안’은 이번 정기국회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12월로 예정된 면세점 신규 특허 심사도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당초 정부는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는 대신 서울 시내 4곳 등 전국에 총 6곳의 시내 면세점을 추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특허기간 단축으로 사업자에서 탈락하게 된 기업들이 최씨가 연루된 사업을 돕는 형태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검찰이 지난 24일 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면세점 관련 정책 자체가 전부 표류하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지난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박주현 등 여야 의원들은 조세소위원회 회의 후 “현재 검찰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 해당 법안을 처리하기에 부적절한 시기”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기획재정위원장인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도 “관세청법 개정안 처리와 별개로 신규 시내 면세점 허가도 중단하는 게 맞다”는 취지의 의견을 정부 측에 전달했다.
면세점은 경기 침체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성장하고 있는 업종이라 재계에서는 이번 정책에 거는 기대가 컸다. 28일 관세청에 따르면 면세점 매출은 2012년 6조3000억원에서 2013년 6조8000억원, 2014년 8조3000억원, 지난해 9조2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시내 면세점 매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숫자도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 다시 회복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유커가 포함된 중국인 입국자 수는 올 1월부터 10월까지 718만8261명으로 이미 지난해 기록(615만4730명)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올해 역대 최대 중국인 입국자 수를 기록할 전망이다.
규제프리존특별법도 ‘최순실’ 딱지가 붙으면서 국회 통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 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서 신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이 각종 사업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도록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등 불필요한 규제를 광범위하게 없애는 게 골자다. 박영선·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이 법은 14개 시도지사가 1~2개 사업을 제안하는 건데, 창조경제추진단장이었던 차은택 씨(47·구속 기소)와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이 사업들을 발굴한 것 아니냐”며 관련 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다만 규제 완화 측면에서 야당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던 법안이라 막판 합의 통과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정부가 추진하던 주요 정책들이 줄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일만 일어나고 있다”며 “규제프리존특별법은 꼭 통과돼야 하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비롯한 벤처 육성 정책도 지속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새로 추진한 정책들과 관련한 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면 기존에 진행하던 정책들만이라도 차분히 차질 없이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3일 약 한달 여만에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며 “정부가 추진해 온 벤처 육성은 소신 있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면 정치권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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