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보칼리노 와인바’. 와인리스트에 통상 많아야 2-3종류에 불과한 글래스와인 종류가 무려 43종이나 마련돼있다. 이 뿐 아니라 350ml, 500ml, 750ml 등 다양한 용량으로 주량과 인원수에 맞게 주문이 가능했다. 혼자 혹은 둘이 와서 와인 한병을 마시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여기서는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한, 두잔씩 주문해 마실수 있어 혼술족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끝모르는 불황이 술 판매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통상 1병씩 시켜마시던 와인 등을 1잔, 혹은 3분의 1, 4분의 1 바틀(bottle) 단위로 판매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것.
26일 호텔업계와 주류업계에 따르면 바(Bar)나 레스토랑의 술 판매 기본단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포시즌스호텔이 최근 와인바를 콘셉트로 재개장한 ‘보칼리노 와인바’의 경우 잔 단위로 판매하는 ‘글라스와인’이 주력이다. 포시즌스 관계자는“다른 곳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와인도 2만원부터 제공돼 가격 측면에서도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포시즌스 뿐 아니라 가격장벽이 높았던 호텔들이 이런 시도에 불을 붙이고 있다. 켄싱턴 제주 호텔은 전통주를 잔 단위로 판다. 조선 3대 명주였던 감홍로, 죽력고, 이강주를 비롯 제주 전통주와 전국 8도 명주 등 다양한 술 중 3가지를 골라 각각 120ml씩 받아볼 수 있다. 가격도 3만9000원이라 호텔치곤 합리적이다. 와인 반병과 가장 인기있는 과일 안주 메뉴를 5만원 미만에 내놓는 곳도 있다.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강남은 4만9000원에 와인 반병(375ml)과 과일 플레이트를 묶었다. 무통 카데 로칠드, 빌라 안티노리 토스카나, 켄달 잭슨 까베르네 쇼비뇽 등 인기와인 중 선택가능하다.
아영 FBC는 동대문 현대시티아울렛 내에 위치한 ‘와인나라 다이닝’에서 잔술로 와인을 판매한다. 한 잔 가격은 4000원. 이 회사 관계자는 “와인은 병을 오픈하고 나면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항상 같은 와인을 내 놓기가 어렵기 때문에 와인 종류를 메뉴판에 명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메뉴판에 와인 이름을 표기해 글라스 와인을 판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와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상면주가가 운영하는 주점겸 양조장인 ‘느린마을양조장&펍’에서는 병술(750ml~1L)과 잔술 120ml~400ml을 대부분 함께 판매한다. 배상면주가 측은 “최근들어 ‘혼술족’과 다양한 술을 찾는 고객들이 늘면서 잔술 비중은 전체 판매비중의 20%에 달할정도로 점점 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생맥주를 제외하곤 잔단위로 판매하는 술의 종류가 한정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와인이나 전통주, 사케 등 잔 단위 판매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면서 “불황에 고가의 술 소비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스몰 럭셔리’를 추구하고픈 젊은 층을 겨냥한 일종의 세일즈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박인혜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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