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8월 1일. 32살 청년이었던 매헌 박승직은 배오개(서울 종로4가 15번지)에서 ‘박승직상점’을 개업했다. 이보다 앞서 매헌은 10여년동안 전라도 영암, 나주, 무안, 강진 등지를 돌며 무명을 수집해 서울에서 판매했다. 이렇게 축적한 상거래 경험과 자본으로 설립된 ‘박승직상점’이 오늘날 두산그룹의 모태다. 사업을 키운 매헌은 한성상업회의소 재직 시절인 1907년, 당시 거족적인 운동이었던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동참해 70여 원을 모금해 기부하는 등 민족 기업가로 활동해 왔다. 1915년 ‘박가분’이라는 화장품이 히트를 치면서 오늘날 두산그룹의 토대를 마련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꼽히는 두산이 다음달 1일로 창립 120주년을 맞이한다.
큰 의미를 두고 행사를 할 법한 시점이지만 두산그룹은 조용히 창립기념일을 보내기로 했다. 두산 관계자는 25일 “창립 120주년 관련 별도의 행사를 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기념사 정도를 사내에 배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은 창업자인 매헌의 아들이자 두산을 그룹으로 육성시킨 연강 박두병 회장 탄생 100주년이 되던 지난 2010년에는 큰 의미를 담고 기념식을 연 바 있다. 더군다나 올해는 창업주 4세 중에 최초로 박정원 회장이 지난 3월 그룹 회장이 됐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가 있는 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립 120주년을 조용히 넘기는 것은 두산그룹이 내실을 기하는데 더 신경을 쓰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년여간의 구조조정으로 두산은 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이다. 하지만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여전히 실적을 다지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반기 최대 관건인 두산밥캣 기업공개(IPO)를 성공리에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두산그룹 안팎에서는 매헌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매헌은 1886년 무렵 강원도 산골을 다닐 때 두달 동안 오직 감자만 먹으며 상인의 기본인 절약정신을 골수깊이 체득했다고 한다. 쌀밥 대신 조밥을 먹으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창업자의 정신을 다시금 새겨보는 시기로 삼겠다는 것이 두산의 자세다.
[박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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