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본격 실시될 경우 1차적으로 농축수산업과 음식업종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음식물(3만원), 선물(5만원) 한도라는 비현실적인 규제도 문제이지만 적용 대상과 처벌 규정이 워낙 포괄적이어서 시행초기에 아예 정상적인 만남 자체를 꺼리는 풍조가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 김영란법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인 브렉시트로 하반기 글로벌 경제가 불안한 상태에서 김영란법은 또 다른 불확실성이다. 하지만 정부나 국회, 공공기관들은 여론의 뭇매가 무서워 경제에 대한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이 약 4조~8조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분석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란법의 피해자는 ‘가진 자’가 아니다. 국내 농어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종사자는 727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고용과도 직결된 문제다. 매일경제신문이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한우 1++등급 1kg는 보통 10만원 정도입니다. 5만원에 맞추려면 겨우 500g인데, 이걸 선물로 어떻게 내놓습니까. 포장비에 배송비까지 하면 5만원으로는 택도 없습니다.”(서울 마장동 M축산 대표 이 모 씨)
“도매가격 기준으로 한우 1+ 등심이 1kg에 6만~6만5000원 정도고, 수입은 1만5000원 안팎입니다. 김영란법 기준을 맞추려면 당연히 한우보다는 수입산을 팔아아겠죠.”(서울 마장동 H축산유통 대표 김 모 씨)
추석을 두 달여 앞둔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시장 상인들의 불안감은 상당했다.
마장동에서 M축산을 운영하는 이 모 씨는 “설마 그대로 시행이 되겠느냐는 생각을 가진 상인들이 많다”며 “파급효과를 예상조차 할 수 없어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도매업을 하는 육 모씨는 “당장 폐업은 안하더라도 매출이 줄면 종업원부터 줄여야 한다”며 “다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씁쓸히 말했다.
마장동 축산시장에는 도매상과 직접 고깃집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섞여 있다. 식사가격 상한선인 3만원에 대해 K한우판매점 이 모 씨는 “한우 3만원을 누구 코에 붙이냐”라며 “괜히 오해받기 싫어 한우 안먹고 외국산 먹자고 할 게 뻔하다”고 설명했다.
시장 상인들은 정부가 국민 혈세를 투입해 ‘한우 고급화’를 추진하면서 이제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김영란법으로 이같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한우 유통업체 S유통의 김 모 대표는 “정부가 한우 고급화 정책으로 질좋은 상품을 개발하면서 소비량이 늘었는데, 김영란법은 이 같은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한우 고급화 정책이 선의에 의해 만들어진 김영란법이라는 뜻밖의 변수에 의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계기로 2004년 FTA이행지원기금을 설치해 축산 농가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해왔다.
정부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FTA이행지원기금에서 농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투입된 금액은 2014년 1874억원, 2015년 1875억원 등이다. 2010년 이후 누적된 금액만도 1조186억에 달한다. 이와는 별도로 2014년부터는 기금 내에서 축산업 진흥만을 위해 별도로 자금을 투입해왔다.
이렇게 투입된 자금은 2014년 1577억원, 2015년 1614억원 등이다.
FTA이행지원기금과 별도로 운영되는 축산발전기금은 지난해 1년간 2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됐다. 최근 몇년만 따져도 십수조원의 자금이 한우 고급화 전략에 직·간접적으로 지원됐다는 의미다.
김미복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한우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상품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한우 품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와 농가 모두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며 “하지만 시장수급에 의한 어려움이 아니라 특정한 법의 제정으로 그동안의 정책효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농축산연합회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한우 농가가 입게 될 피해 규모가 연간 41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한우 선물세트의 99%가 5만원 이상인 가운데 명절 판매량이 50% 가량 줄어든 상황을 가정해 도출한 피해 규모다.
물론 이 같은 피해 추정은 시행 후 상당기간을 면밀히 추적 검토해야 입증되는 것이지만 관련 업계의 심리적 불안감도 큰 문제다.
김홍길 전국한우협회장은 “부정부패를 막자는 취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를 하지만, 인위적으로 금액을 정해버리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며 “비단 한우 사육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통·사료·포장 등 전후방 산업 전체가 도미노식으로 타격이 오기 때문에 FTA보다 더 강한 여파가 올 것은 불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김영란법 시행으로 수입산 쇠고기 점유율이 확대될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가뜩이나 한우 사육두수 감소로 한우 가격이 오르면서 수입산 쇠고기의 점유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데, 김영란법 시행이 수입산 쇠고기의 판매를 오히려 촉진하는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한우 갈비 소매 평균가격(100g)은 2015년 4664원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4984원으로 6.9%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산 갈비 가격은 2400원에서 1948원으로 18.8%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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