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회장의 이번 결정에는 남모를 고민이 깊게 배어 있다. 그룹 안팎의 관계자들은 높은 이직률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가장 컸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랜드는 직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많이 주고 단기간에 업무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연봉이나 처우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러자 ‘패션사관학교’ 이랜드의 임직원을 스카우트하려는 경쟁사들이 많았다.
이직에 대해 이랜드는 지금까지 강경 일변도였다. 업무 성격과 중요도, 경력에 따라 일부 직원들에게 일정 기간 이직을 금지하는 ‘전직 금지 서약서’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 계약을 어기면 소송도 불사한다. 이랜드는 금융사로 이직한 한 직원에 대해 6개월간 소송을 벌여 합의금 100만원을 받아내기도 했고 옮긴 회사의 대표를 찾아가 ‘기업비밀을 빼돌렸다’며 항의한 일화도 유명하다. 지난해 7월 제일모직을 상대로 “중국시장을 키워온 핵심인력을 빼갔다”며 영업비밀침해금지소송을 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직한 직원은 서약서 위반으로 수천만원을 물어야 했다. 그러자 “전직을 막는 데 공을 들이느니 애사심을 갖도록 처우를 높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이번 조치는 직원 이직을 막기 위한 ‘당근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은퇴기금은 정년퇴직했을 때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기 때문에 이랜드에 오래 근무하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다.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일도 박 회장이 직원 처우를 높이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유통업체는 하청업체에 이른바 ‘갑’의 자리에 있어 항상 비리 유혹에 노출돼 있다. 이랜드에서도 지난해 말 감사에서 직원 20여명이 징계대상에 올랐고, 박 회장이 신뢰했던 임원이 거액의 돈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미지 개선효과를 노렸다는 시각도 있다. 기독교기업으로서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이랜드는 몇몇 대형 파업사태를 겪고 대외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노조에 대한 강경한 대응 때문에 예비 취업자들에게 ‘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회사’의 이미지를 줬다는 것. 이를 해소하려는 방안으로 신입사원 연봉을 대폭 인상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발표에 대해 내부에선 적지 않은 직원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연봉 인상 조건이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이랜드는 자녀 학자금을 주면서도 직원 고과점수는 대략 B 수준 이상, 자녀 학점은 3.0 이상이라는 조건을 내건다. 공부 못하면 학자금도 받지 말라는 말이냐? 박 회장은 직원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파격 대우를 약속했지만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어 정작 연봉이 큰 폭으로 인상될 직원은 많지 않을 것이다”라며 한 내부 직원이 전했다. 또 관리직 정직원, 그것도 과장급 이상에만 초점을 맞춰 비정규직과 현장의 말단사원에게는 그 혜택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박 회장의 ‘통 큰’ 결단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직원 신뢰를 얻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93호(1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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