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동과 무교동, 위치는 롯데호텔 건너편, 서울시청 뒤, 서울파이낸스 빌딩 뒤에서 청계천까지이다. 이 다동과 무교동, 지금도 이 근방 직장인들이 가장 애정하는 동네이다.
‘다동茶洞’은 조선시대 다도와 차례를 주관하던 ‘다방茶房’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고, ‘무교동武橋洞’은 조선시대 이 부근에 무기의 제조 관리를 맡아 보던 군기사가 있어 모전다리 부근에 있던 모교동과 구별하기 위해서 무교동으로 이름 붙였다. 이 지역은 1970년대 ‘황금기’였다. 주변 시청과 을지로 인근에 관공서, 기업, 금융기관이 밀집하면서 낮에는 점심을 해결하고, 밤에는 한 잔 술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 차츰 노옥들이 허물어지고 재개발되고 낙지골목인 서린동도 이전하면서 무교동의 옛 정취는 그대로 사라졌다.
그래도 부자집 곳간이 금방 비겠는가. 이곳은 ‘다동무교동 음식문화거리’로 여전히 명성을 잇고 있다. ‘벌교에서 주먹자랑을 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자랑 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 하지 마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처럼 이 동네에서 ‘노포 자랑’을 하면 안 된다. 여기, 어지간한 집들도 거의 40년 이상의 ‘진정한 노포’들이다. 한 30년 장사 이력으로는 간판에 ‘since 1994년’은 붙이지도 못한단다.
다동 노포 탐사
매일 담그는 물김치, 재료라 해도 무, 소금, 파가 전부인데 이것이 장독대에 들어가 면 기막힌 동치미가 된다. 그 동치미 국물에 양지머리 육수를 섞어 내는 평양냉면은 시원하고 뒷끝없는 ‘남포면옥’의 비법이다. 1982년 문을 연 ‘참복집’은 복칼국수를 냄새가 ‘식욕의 최전선 감각’을 자극한다. 살짝 익은 미나리부터 시작해 시원한 칼국수, 젓가락에 가끔 걸리는 작은 복의 살은 은근 건져먹는 재미를 준다.1968년 문을 연 ‘낙동강’. 옥호를 봐서는 당최 무엇이 주종목인지 헷갈리지만 점심 단골이 들끓는 집이다. 바로 등심이 나오는 점심 때문이다. 냉동된 얇은 등심과 된장찌개의 조화는 오후의 직장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1956년에 문을 연 ‘부민옥’은 ‘부자 백성의 집’이라는 옥호가 마음에 드는 곳이다. 주종목은 육개장, 양곰탕, 양무침이다. 육개장은 매콤시원하고 건더기는 푸짐하다. 양곰탕은 잘 손질한 양으로 국물을 우려 잡냄새가 없고 뽀얗다. 멸치볶음 반찬도 입맛 당긴다.
1968년 시작한 ‘무교동북어국’은 너무 유명한 집이다. 아침부터 해장하려는 직장인들이 줄을 선다. 11시간 이상 푹 곤 사골국물 북엇국은 한 끼 이상의 맛이다. 국물을 리필해 주는데 그 양도 푸짐하다. ‘금이 샘솟는 집’이라는 ‘용금옥’은 1932년에 문을 연 추탕(추어탕) 명가이다. 1973년 남북회담 북한측 대표 박성철 부주석이 “용금옥은 지금도 잘 있습니까?”라고 물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곳은 소 내장과 양지머리로 육수를 내고 대파, 실파, 유부, 두부, 버섯과 통으로 된 미꾸리(잉어목 미꾸리과의 민물고기)를 넣어 끓인다. 물론 ‘갈아주세요’도 되지만 남도식과 다른 것은 시래기나 우거지가 없다는 점. 펄펄 끓는 추탕에 밥과 국수를 넣어 먹으면 그야말로 보양식이다.
[글과 사진 장진혁(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6호(24.11.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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