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와 감동의 성공적인 레시피
영화 <3일의 휴가>는 하늘에서 3일간 딸의 옆으로 휴가를 온 엄마 ‘복자’와 교수 일을 그만둔 뒤 엄마의 레시피로 시골 집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딸 ‘진주’의 이야기를 다룬 힐링 판타지 영화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님은 어머님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휴가 동안 좋은 기억만 담고 오시면 됩니다.” 죽은 지 3년째 되는 날, ‘복자’(김해숙)는 하늘에서 3일간의 휴가를 받아 신입 ‘가이드’(강기영)와 함께 지상에 내려온다. 미국 명문 대학교 교수인 자랑스러운 딸을 볼 생각에 설레던 마음도 잠시, 돌연 자신이 생전에 머물던 시골집으로 돌아와 백반 장사를 시작한 ‘진주’(신민아)의 모습에 복자는 당황한다. 엄마를 홀로 둔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딸이 안타깝지만 진주와 대화도, 접촉도 할 수 없는 복자에게는 오직 3일 동안 딸의 모습을 눈에 담아오는 것만 허락된다.
2019년 신하균·이광수 주연의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를 선보이며 호평받았던 육상효 감독의 ‘가족’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이번 영화에도 담겨 있다. <7번방의 선물>(각색), <82년생 김지영>(각본)부터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휴먼 드라마를 선보인 유영아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대한민국 영화·드라마 속 엄마 역할로 다채로운 색깔의 모성애를 보여준 40여 년 관록의 김해숙이 이번 작품을 통해 신민아와 모녀로 처음 호흡을 맞춘다. 세파에 시달리며 만들어진 회한 가득한 눈빛을 김해숙만큼 잘 연기해낼 사람이 있을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장성한 자식에게 연락 한 번 하기가 힘든 우리네 많은 엄마들 모습 그대로다.
(사진 ㈜쇼박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갯마을 차차차> 등 전원 배경의 최근작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신민아가 백반집을 운영하는 ‘진주’ 캐릭터를 맡아 김해숙과 실제 모녀 같은 관계를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를 응원하는 멘토로 따스한 감동을 전했던 강기영이 <3일의 휴가>에서는 ‘복자’의 특별한 휴가를 돕는 ‘가이드’ 역으로 유쾌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막 일을 시작한 듯 열정이 넘치고 규칙을 지키려는 FM 같은 모습도 있으나, 진주를 지켜보며 속상해 하는 복자의 감정에 공감하는 정 많은 면모도 지녔다.특히 복자의 오랜 친구인 ‘춘분’ 역의 차미경이 눈에 띈다. 복자의 과거를 진주에게 들려주는 극중 전달자로 분해 자연스러운 사투리와 함께 깊은 내공을 보여준다. 춘분의 다정다감한 아들 ‘용식’ 역 박명훈, ‘젊은 복자’ 역으로 출연한 배우 배해선 등 충무로에서 맹활약하는 배우들도 안정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사진 ㈜쇼박스)
코믹 판타지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김해숙과 강기영의 코믹 케미스트리 때문에 처음엔 무척 발랄하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복자와 진주 두 모녀의 과거 갈등, 서로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감정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눈물샘을 자극한다.시골 집에 내려와 음식을 해먹으며 힐링하는 장면들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리게 하지만 <3일의 휴가>에서는 ‘음식’ 자체보다는 모녀의 ‘기억’에 집중한다. 무를 만두소에 넣어 단맛을 곁들인 만두, 갓 만들어 김이 피어오르는 수제 두부, 한 솥 가득 끓여 낸 잔치국수 등 음식 또한 조리 과정까지 기교나 컬러감을 살리기보다 엄마 ‘복자’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추억의 맛을 찾아가는 과정에 중점을 둔 듯 보인다. 육상효 감독이 “이 영화는 부모님 전화 안 받는 자식들, 그들을 위한 영화다”라고 밝힌 만큼, 영화를 보고 나면 소원했던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싶어진다. 러닝타임 105분.
(사진 ㈜쇼박스)
[글 최재민 사진 ㈜쇼박스][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8호(23.12.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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