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실화 영화의 묵직한 분노
굳건하게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는 <서울의 봄>이 개봉 3주차 관객수 500만 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12월6일 기준)을 돌파했다.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국제시장>보다 빠른 추세다. ‘그날의 9시간’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통령 암살사건이 일어난 1979년 10월26일 이후, 수사 책임자인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게 된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은 권력 찬탈을 위해 12월12일 군내 사조직을 총동원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다. 영화는 이 반란군에 맞서서 나라와 국민을 지키려 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측 진압군 사이의 일촉즉발의 9시간을 다룬다.
수차례 영화화되었던 10.26이나 5.18 광주민주항쟁과 달리, 한 번도 스크린에서 다룬 적 없던 12.12는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같은 문장으로만 기억되던 사건이었다. 당시 고3이던 김성수 감독이 20여 분간 한남동에서 총소리를 직접 들은 이후 꾸준히 품었던 의문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영화는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립 속 내부 상황을 큰 축으로 놓고, 신군부의 핵심인 전두광과 실제 인물을 다소 각색한 이태신의 대결과 공방을 영화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묘사해, 관객들이 그 9시간의 밤으로 더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탐욕 그 자체인 ‘전두광’과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신념과 책임감의 군인정신에 투철한 ‘이태신’은 정우성이 맡아 필모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비트><태양은 없다><아수라>에 이어 김성수 감독과 다섯 번째 만난 정우성은 적절히 나이 든 중후한 느낌 속에 ‘진짜 군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연기, 결말을 알고 있지만 막판까지 이태신 장군을 응원하게 만든다. 여기에 극단적인 분장에 ‘황정민이 황정민 했다’고 보일 만한 연기를 펼친 ‘전두광’ 역의 황정민,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녔지만 전두광의 권력욕에 편승해 군사반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9사단장 ‘노태건’ 역의 박해준, 총소리가 들린 직후 숨어 있다가 새벽녘에야 발견되는 국방장관 역의 김의성, 끝까지 항전한 특전사령관 역의 정만식 등 주조연 가리지 않고 배우들의 역대급 연기 향연을 볼 수 있다. 특히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역을 맡은 이성민은 전두광의 신군부를 견제하려는 합리적인 판단 직후, 연행당할 때의 분노와 당황스러운 감정을 실감 나게 연기한다. 특전사령관의 부관으로 끝까지 사령관과 함께 하는 ‘오진호 소령’ 역으로 특별 출연한 정해인의 얼굴도 반갑다.
(사진 (주)하이브미디어코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공포 전략부터 조직 내의 끈끈함, 휴먼 네트워크까지 각종 지략을 펼쳐내는 반란 세력에 비해, 다소 도덕 교과서적으로 접근하는 진압군 쪽이 당시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거울 효과처럼 보여준다. 영화는 사건 당일 9시간에 영화의 대부분을 투자함으로써, 마치 ‘대사로 전쟁을 치르듯’ 공수가 끊임없이 바뀌며 쫄깃하게 펼쳐지는 일진일퇴의 상황을 잘 그려낸다. 후반부 총격전이 나오기 전까지 전화, 녹음, 회의 등 실내 장면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그럼에도 다이내믹하다. 칼과 총을 들지 않았지만 전쟁을 벌이는 듯한 정치판, 전화가 빗발치는 장면에서 마치 총알처럼 날아다니는 대사 덕이 크다.여기에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장면 구성과 편집, 당시 상황을 마치 게임 시나리오처럼 보여주는 CG와 자막. 그리고 전시가 아님에도 전방 부대 병력과 탱크, 공수부대가 수도로 진입했던 그날의 생생한 현장감은 실제 사건에 대한 이해를 크게 돕는다. 한국 영화에서 처음으로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전면적으로 다룬 점, 현재까지 이어져 온 12.12 사태의 역사적 맥락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암울한 엔딩으로 극장 문을 나서게 만든 것도 영화가 선물하는 리얼리티의 힘처럼 느껴진다. 러닝타임 141분.
(사진 (주)하이브미디어코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글 최재민 사진 (주)하이브미디어코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9호 기사입니다]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