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추 괴물’의 소설에 일본이 뒤집어졌다『헌치백』
어둠을 동경하는 청년, 세상에 뛰어들다『타국에서의 일 년』
어둠을 동경하는 청년, 세상에 뛰어들다『타국에서의 일 년』
지난 7월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시상식장에 전동 휠체어를 탄 중증 장애인이 등장했다.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을 앓고 있는 이치가와 사오는 목에 꽂힌 기관절개 호스를 누르며 기자들의 질문에 유머러스하게 답했다.
‘꼽추 괴물’의 소설에 일본이 뒤집어졌다『헌치백』
일본을 들썩이게 한 문제작이 한국에 상륙했다. 소설 쓰기는 몸이 불편한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한 일이었다. 해마다 SF, 판타지, 라이트노벨 등을 넘나들며 글을 써왔지만, 20여 년 만에야 절박한 마음으로 쓴 이치가와 사오의 첫 비장르 소설 『헌치백』. 그는 이 책으로 문학계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할 수 있었다.『헌치백』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샤카는 ‘Buddha’ 등의 계정으로 인터넷 기사를 짜깁기한 야한 글이나 야한 소설을 써서 먹고 산다. 성장기에 자라지 못한 근육으로 심폐 기능이 부족해 제 발로 걷지 못한 지 30년이 됐다. 누워있을 때는 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한다. 등은 극심하게 ‘S’자로 굽었고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 TV도 왼쪽에 두고 봐야 한다. 캐뉼러 구멍을 막아야 말을 할 수 있어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장애인 그룹홈에서 5평짜리 방과 주방, 욕실이 주어진 공간 전부다. 그는 무거운 데다 자세를 유지해야 해서 등뼈를 굽게 만드는 종이책을 혐오한다.
스스로를 ‘꼽추 괴물’이라 부르는 샤카는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따위의 글을 올리는 익명 트위터 계정이 있다. 거침없는 망언을 하며 속박된 몸과 대조적인 불온한 감정을 쏟아내던 그는 어느 날 문제의 글을 올린다. “임신과 중절을 해보고 싶다.” 출산도 육아도 견딜 수 없는 몸이지만 임신과 중절까지라면 보통 사람처럼 가능할 테니까 평범한 여자 사람처럼 해보는 게 꿈이라면서. 하지만 이 욕망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욕망일 수밖에 없다.
목욕을 시켜준 날, 간병인인 다나카가 말을 건다. 트위터 글을 봤다고. 부유한 상속녀였던 샤카는 1억5,500만 엔에 계약을 맺는다. 두 사람은 죽이기 위해 태어날 생명을 만드는 일을 시도한다. 샤카의 바람은 계획대로 순순히 진행되진 못한다. 결국 자신이 쓴 소설 속 성매매를 하는 여대생 주인공의 입을 통해 그는 자신의 바람을 구현하는 데 그친다.
“샤카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죽이고자 했던 아이를 언젠가/지금 나는 잉태할 것이다.” 비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일본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비장애인 중심의 출판 문화에도 독설을 쏟아내는 거침없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결국 작가는 20년 만에 자신의 꿈을 이뤄낸 것이다. 작가는 장애인을 배제한 일본 출판문화를 비판하고 ‘독서 배리어 프리’를 호소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독자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서문에서 작가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가 그려낸 장애 여성의 성과 삶, 로맨스의 이야기는 장애 당사자인 저에게 수많은 감정과 두고두고 크리에이터로서의 창작 의욕의 원천이 됐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창래 지음 /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어둠을 동경하는 청년, 세상에 뛰어들다『타국에서의 일 년』
“네 안에는 어떤 절박함이 있어. 일종의 허기가 있지.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혼란에 빠지는 남자는 이창래 작가의 소설에 매번 나오는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좀 남다르다.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재미 한인 소설가 이창래의 장편 『타국에서의 일 년』은 전작과 달리 한국인이 아닌 전형적인 20대 미국인 틸러 바드먼이 주인공이다.사라진 어머니를 대신해 싱글대디로 자신을 돌봐 온 아버지의 사랑도 추상적이라고 느끼며 부자 관계에서 언제나 선을 지켜온 그는 우연히 퐁을 만난다. 자신의 초라한 현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떠나고 싶었던 틸러는 큰 고민 없이 퐁의 조수로서 그 여행에 따라나선다. 마치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파도를 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회오리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사람처럼. 그리고 중간기착지인 하와이와 중국 선전, 마카오, 홍콩 등 동아시아의 화려한 무역도시들을 배경으로 어딘가 수상하고 때론 기이한 이들의 여정이 펼쳐진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MZ세대 청년을 등장시켜 색다른 서사를 선보인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은 운명적 만남과 타국에서 보낸 일 년의 시간, 동서양을 종횡무진하는 장대하고 흡인력 넘치는 서사를 통해 작가는 전래 없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느니 어둠에라도 속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기파멸적 충동을 보여주던 청년. 어디에도 완벽히 속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 누구보다 치열히 세상과 부딪혀 온 작가는 여전히 빼어난 문장과 세상을 향한 성찰을 통해 매력적인 문학적 여정을 펼쳐 보인다.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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