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영화
마이클 패스밴더가 데이빗 핀처 감독과 함께 찍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화제성 있는 영화다. 킬러를 인간적이고 쿨하게 그리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더 킬러> 속 주인공은 가차 없이 죽이고, 누구든 죽인다. 건조해서 오히려 쿨한 영화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 청부를 받은 킬러가 텅 빈 사무실에서 맞은편 고급 아파트에 나타난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다. 손에 든 것은 라이플총 한 자루. 그는 철저한 계산과 통제 하에 한 단계씩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타깃을 놓친다. 처음 있는 실수다. 킬러는 빠르게 도망치려 하지만 의뢰인들은 그의 안식처를 무너뜨리고, 킬러는 차가운 복수에 나선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1995년 개봉한 연쇄 살인 스릴러 <세븐>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가 앤드루 케빈 워커와 재회한 영화 <더 킬러>는 냉철한 킬러가 단 한 번의 실수로 타깃을 놓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누아르 스릴러다.
알렉시 놀랑(일명 ‘마츠’)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마이클 패스밴더는 어떤 감정도 없이 무표정으로 총을 쏴대는 텅 빈 모습의 킬러를 그린다. 영화 속 주인공은 최첨단 장비나 조직 대신 아마존과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며, 자기만의 단순하고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려 제거한다. 관객들이 예상치도 못한 타임에 가차 없이.
넷플릭스 제공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신념대로 암살과는 상관없는 비서, 오래 함께 일해 온 동료 등을 죽이는 데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내레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머릿속을 따라가던 관객들이 세게 뒤통수를 맞는 순간이다. 주인공 핀처 감독이 말한 대로 “보고 있으면 쉽게 불편해지는 캐릭터”다. 덕분에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대신, 무자비한 폭력성을 띤 살인업자의 위험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다. ‘맞아, 실제 킬러는 저렇겠지’.주인공이 목표물을 관찰하는 잠복 장면의 아파트 신은 데이빗 핀처 감독이 모티브로 삼았다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을 떠올리게 한다. 길게 이어지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따라 관객들은 킬러가 듣는 음악을 함께 듣는다. ‘그 입 다물어, 어떻게 네가 내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더 스미스 ‘How Soon Is Now?’ 中)
더 킬러 스틸컷(넷플릭스 제공)
2008년 작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출연했던 틸다 스윈턴은 자신의 완벽한 세계에 균열이 생긴 킬러가 쫓는 일명 ‘전문가’를 연기하고, 아드레날린에 취한 플로리다의 살인 청부업자, 일명 ‘짐승’ 역은 배우 살라 베이커가 맡았다.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 음악, 지루하다 싶게 이어지는 내레이션의 정적인 느낌을 상쇄시키는 다이내믹한 액션 신, 킬러 영화의 클리셰를 무너뜨리는 서사가 오히려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쿨한 영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복수 상대 중 하나였던 틸다 스윈턴과의 레스토랑 장면에서 위스키 샘플 세트를 놓고 벌이는 둘의 대화는 영화의 백미. 일부 극장에서 개봉하며 넷플릭스에서는 11월10일 만나볼 수 있다.
[글 최재민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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