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1000만 관객에 더 이상 목매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린다. 해외 판매국이 늘어 손익분기점이 크게 낮아지면서다. 코로나19로 관객들의 극장 방문이 줄어들면서 글로벌 공감대가 있는 영화를 개발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21일 투자배급사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는 강동원 주연 좀비물 '반도'가 개봉 첫 주말 아시아에서 박스오피스 2000만 달러(239억 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지난 주 이 영화가 상영을 시작한 5개국에서 달성한 성적이다. 대만에서는 15일부터 지난 19일(일요일)까지 470만 달러(56억 원)을 벌어들이며 흥행 순위 1위에 자리했다. 이 밖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에서 좌석 간 거리두기 등의 제약에도 한국영화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23일 개봉하는 태국에서도 사전 예매율 1위로 올라서는 등 향후 관객과 만나게 될 나라에서 기대감이 커지는 상태다.
◆ '반도', 해외 VR 콘텐츠 판매 등으로 손익분기점 절반으로 낮춰
태국에서 최근 진행된 `반도` 길거리 프로모션에서 좀비로 분장한 사람들이 영화를 홍보하고 있다. [사진 제공 = NEW]
애초 '반도'는 해외 190개 국 선판매를 통해 손익분기점을 절반가량 낮췄다고 밝히면서 화제를 모았다. 542만 명이었던 국내 관객 손익분기점을 250만 명까지 떨어뜨린 것. 해외 판매에 따른 미니멈 개런티(MG) 수익에 VR(가상현실) 콘텐츠 판매 매출을 더했으며, IPTV 등 부가판권 판매에 따른 이익은 '부산행'을 기준으로 예상치로 잡았다. 흥행에 따른 러닝개런티는 더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NEW 관계자는 "영화 한 편이 창출할 수 있는 수익의 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며 "극장 손익분기점만을 기준으로 영화의 성패를 판단하기엔 역부족인 시대"이라고 설명했다.◆ '기생충' '신과 함께' 선판매 후 현지 흥행도 '대박'
올해 개봉 영화 중 수출 희소식을 가져온 작품은 '반도'뿐만이 아니다. 하정우 김남길 주연 미스터리 드라마 '클로젯'(2/5 개봉)은 56개국에 선판매됐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특별상을 받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19)은 개봉 전 80개국에 팔려갔다. 지난 4월 공개된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행 선택으로 법적 분쟁을 겪기 전 30개국에 판매되며 해외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판타지 영화 `신과 함께`는 1, 2편을 합쳐 해외 티켓 매출로 690억 여 원을 올렸다.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물론 한국영화를 구입해간 모든 나라에서 해당 작품을 개봉하는 건 아니다. 최근 한국영화 글로벌 실적에서 고무적인 부분은 흥행 수입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 2편이 108개국에 판매된 '신과 함께'는 해외 티켓 매출로만 690억 여 원을 벌어들였다. 이 작품은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이 해제되면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할 영화로도 이목이 집중된다. 제작사 관계자는 "1편 상영을 완료한 2018년 무렵 1, 2편에 대한 수출 계약을 이미 완료 지었다"며 "중국정부에서 문화적으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음성 편집을 완료해 개봉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봉준호 감독 `기생충`은 192개국에 판매돼 해외 티켓 매출만 2222억 원을 넘겼다. [사진 제공 = CJ ENM]
프랑스 칸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봉준호 감독 '기생충'은 해외에서 국내 매출의 2배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전 세계 영화관 티켓 매출을 집계하는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의 한국 외 수익은 1억8546만 여 달러(약 2222억원)로 한국 수익인 7143만 여 달러의 2.6배에 달한다. 봉 감독은 해외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설국열차' 프로젝트를 할 당시에도 제작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억 원을 선판매로 거둬들인 바 있다.◆ 코로나로 극장 방문 크게 줄어 "해외 공감대 높은 콘텐츠 개발 절실"
봉준호 감독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는 해외 선판매를 통해 제작비 200억 원을 회수했다. [사진 제공 = CJ ENM]
한국영화는 해외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대중의 극장에 대한 선호가 예전 수준으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라 예측하는 시선이 많아서다. K팝이 글로벌 콘텐츠가 되면서 가요 프로그램 1위에 과거만큼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K무비도 각국에서 전반적인 호감을 높이는 게 필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1761만 명이 본 '명량'이 6년 전 나온 이래 이를 뛰어넘는 영화가 아직 없을 정도로 한국 시장은 포화 상태"라며 "최근 좀비물이 전 세계인과 공유하는 소재를 바탕으로 선전했듯, 한국 고유의 개성과 해외 팬과의 공감대를 함께 높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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