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집에 갇힌 사람들의 갑갑한 마음이 투영됐을까. 박스오피스 1, 2위를 모두 탈출 영화가 휩쓸었다.
19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8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본 작품 1위는 '프리즌 이스케이프', 2위는 '더 플랫폼'이다. 두 영화는 15~17일 주말 3일간에도 국내에서 최고 흥행작 1, 2위를 나란히 꿰찼다. 이들 작품 전부 설정이 신선하다는 입소문이 흥행의 디딤돌이 됐으며, 그 설정은 감금상황에 기반한다.
`더 플랫폼`에서는 제일 꼭대기층 관리자들이 내려준 음식을 0층부터 지하 수백층까지 차례로 전달하며 먹는다. 위층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아래층 사람이 쫄쫄 굶는 상황이 코로나19 시대 사재기를 보는 듯하다.[사진 제공 = 더쿱]
해당 기간 나흘 간 3만8551명이 본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진 탈옥 실화를 담았다. 팀 젠킨과 스티븐 리는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에서 시행된 인종분리 정책)에 반대하며 투쟁하다가 잡혀 중앙교도소에 수감된다. ANC(아파리카국민회의)와의 연계 혐의 등으로 12년 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나뭇조각으로 열쇠를 만들기 시작한다. 무려 15개의 문을 들키지 않고 통과해야 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수감자가 간수와 맺는 인간관계나 등장인물의 과거 이야기 대신 탈출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구멍을 파는 동작을 롱테이크로 보여준 탈옥 영화 고전 '구멍'(1960)을 연상케 한다. 연필과 종이로 열쇳구멍의 모양과 넓이를 알아내고, 눈짐작으로 열쇠 형태를 기억했다가 제작도를 그리는 탈옥의 각 단계를 쌓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어딘가에 오래 갇히면 달고나 커피처럼 공이 많이 드는 DIY(소비자가 직접 만드는 것)에 빠지는 게 인간 본성인가 싶다. 영화 '해리 포터'에서 주인공 해리 포터로 분한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주연했다.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더 플랫폼`은 플랫폼이란 이름의 수직 감옥 이야기다. 모든 층 수감자가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음식이 0층에서 시작해 지하로 내려가지만, 위층 사람들 탐욕에 아래층은 굶주린다. [사진 제공 = 더쿱]
같은 기간 2만5199명을 동원한 '더 플랫폼'은 공상과학(SF) 영화다. 수직 감옥 '플랫폼'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 플랫폼은 0층부터 시작해서 지하로 쭉 뻗은 공간이며 각 층에는 두 명씩 수감된다. 매일 0층에서 디저트, 달팽이요리, 와인, 고기를 포함해 진수성찬으로 한 상 차림을 엘레베이터로 전달하면 각 층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먹고 다시 내려보내는 시스템이다. 수감 기간을 버텨내면 형기를 마치고 바깥 세상으로 나갈 때 포상이 내려지는 것으로 수감자들은 추정한다.그러나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음식 때문이다. 0층에선 모든 층에 있는 사람이 먹을 만큼의 식사를 내리지만 항상 50층(숫자가 높을수록 아래층) 쯤 가면 남은 게 거의 없다. 위층에 거주하는 이들이 아래층 수감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욕구를 채워서다.
지하 48층에서 감옥 첫날을 시작한 주인공(왼쪽)은 위층 사람들이 이미 먹고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상황에 역겨움을 느낀다. [사진 제공 = 더쿱]
아래층에 있어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매달 한 번씩 수감 층이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층에서 고층으로 옮기게 된 사람은 아래층 거주민에게 역지사지의 마음을 쓰기보단 '지난 달 나도 배려받지 못했다'는 억하심정을 발동한다. 위층에서의 폭식엔 언제 또 아래층으로 내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한다. 그렇게 매달 복수심과 불신이 쌓여 플랫폼 내 자살률은 높아진다.주인공은 층간 소통이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서로 신뢰를 쌓아보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0층에서부터 지하 맨밑바닥까지 음식이 온전히 전달됐을 때 이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 형벌을 멈출 것이라 믿는 듯하다. 모두가 정량만큼 먹고 음식을 내려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감옥 운영진으로부터 그런 미션이 주어지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가 무엇을 위해 고군분투하는지 관객이 다소 어리둥절한 기분에 빠지는 이유다. 이것은 연출력의 빈약함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 생리의 묘사라고 풀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코로나에 대해서도 신이나 자연이 "이건 내가 보낸 메시지"라고 공식 발표한 적이 없지만 인간은 창조주와 대자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찾는 존재 아니던가. 이 영화 홍보사에선 위층 사람들이 폭식하는 모습을 통해 휴지와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코로나 시대의 인간 군상을 읽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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