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그 유토피아적 공간.
푸른 하늘과 황토빛 건물, 뭉게뭉게 솟아오른 구름은 이곳이 과연 어디일까라는 물음을 갖게한다. 동양화를 전공으로 한 작가 나형민은 한지의 푸른 채색과 토분을 이용해 현대의 도시풍경을 주로 담아내는 작가이다. 전공으로 한 동양화와 그의 미술세계의 주제라 할수있는 도시는 매우 상충된 느낌을 갖게하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오늘날 도시라는 존재가 수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도시공간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의식에 주목했고, 이는 '도시'라는 공간이 실재와 유리된 가상의 이미지로서 기호화된 것"이라 설명한다. 덧붙여 "마치 전통 회화 속에 산수화가 단순히 산수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닌 이상향을 제시하고자 했듯 현대인에게 있어서 '도시'는 실제의 모습과는 달리 유토피아적인 열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며 도시풍경을 작업의 주제로 삼고있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작가가 본 도시풍경
그의 작품 속에는 오려낸 듯한 집 모양의 풍경들이 뭉게구름 위에 놓인 천상의 도시 마냥 부유하고 있고, 토분으로 작업한 황색의 풍경은 고요하다 못해 황량한 느낌을 주고 있다. 즉, 이것은 우리가 사는 실제의 공간이 아님을 의미한다. 작가는 구체적인 특정 장소를 그렸다기보다는 도시를 대변하는 혹은 현재 이곳의 풍경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도시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으로만 기운다거나, 도시가 제공하는 유토피아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 아닌 현실과 이상, 실제와 상상의 경계에 선 풍경을 관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현실과는 거리가 먼 풍경을 통해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노트_잃어버린 지평
샹그릴라 호텔, 샹그릴라 리조트, 샹그릴라 나이트 등등...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자주 마주치게 되는 '샹그릴라'라는 간판은 휴식과 쾌락을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될 뿐 아니라 최근에는 시간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시니어 계층의 젊게 살아가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을 '샹그릴라 신드롬(shangrila syndrome)'이라 부른다. '샹그릴라'라는 단어의 유래는 1933년 제임스 힐튼(James Hiltom)의 소설 '잃어버린 지형선(Lost Horizon)'에 나오는 가상의 지상 낙원에서 비롯되었다.
인도의 폭동을 피해 소형비행기를 탄 주인공인 영국 영사 콘웨이와 일행은 사로로 히말라야 산중에 불시착하게 되고 여기서 샹그릴라라는 이상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은 볼로불사의 장수를 하면서도 자연의 보호와 물질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삶이 가능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샹그릴라(Shangri-La, 香格里拉)는 장족어(藏族語)로 ‘마음의 해와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이상향, 낙원의 대명사가 되었다. 소설이 발행된 이후에는 수많은 여행자들로 하여금 샹그릴라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히말라야의 산중을 배회하게 만들었고, 프랭클린 D.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 시절에는 미국 메릴랜드(Maryland)에 건립된 대통령 휴양지 명칭으로도 사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상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자 삶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바람일 것이다. 일상의 삶이 어렵고 현실에 지칠수록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은 삶의 고통을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 산수화(山水畵)가 단순히 산수자연을 재현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인의 산수자연에 대한 귀의를 대신한 와유(臥遊)의 의미를 담고 있듯이, 도시화(都市化)를 통해 건설된 도시 공간 역시 현실 공간에 지상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욕망 아래 추진되어 왔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건축물들이 낙원과 파라다이스를 표방한 브랜드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로얄, △△팰리스, □□파크 등등 우리 주변의 공간에는 수많은 이미지와 기호들로 뒤덮여 있고 그 난무하는 표상들이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유토피아를 수사(rhetoric)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소망하는 이상세계로서의 역할을 도시가 이루어낸 유토피아적 이미지가 실질적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도시공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유토피아의 환상은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시뮬라크라(Simulacra 모방현실)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선인들은 세속을 떠나 산수자연에 귀의하려 했으나, 현대인들은 물질문명이 이룩한 풍요의 도시 속에서 적극적인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며 어느덧 도시는 필수불가결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저 지평선 너머의 낙원을 지향하면서도 현세의 세속적인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경계에 선 존재가 되었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도 결국 콘웨이와 일행은 이상세계인 샹그릴라를 벗어나 다시 세속으로 돌아오게 되고, 뒤늦게 현실을 인식하고 되돌아가고자 하지만 다시는 그곳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 샹그릴라 역시,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되찾을 수 없었던 도원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지평은 유토피아라는 어원 그대로 그리이스어의 ou ('없다'는 의미, 영어의 no)와 topos ('장소'라는 의미, 영어의 place)를 합쳐 만든 말로서 글자 그대로 NoPlace, 즉 아무 곳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제 목 : NOWHERE _ 나형민 개인전
◑ 장 소 : 인사동 쌈지길 (아랫길 B1F) 갤러리 쌈지
◑ 일 시 : 2009. 2. 18(수) - 3. 1(일)
◑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문예진흥기금 신진예술가지원 선정사업
◑ 문 의 : 02)736-0088, www.ssamzig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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