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아했다. 흑인음악 '재즈'와, 무당의 음율인 '동해안 별신굿'을 접목한 음악이라니. 음식에서 괴식이 유행하고, 패션에서 '못생긴 옷'이 주류 자리를 꿰차더니, 이제 음악에까지 괴랄(怪辣)한 것들의 시대가 찾아온 것인가. 지난 11일 서울 CJ아지트 대학로 무대에 오른 드러머 김태현은 '접신'한 듯 드럼을 연주하며 국악의 소리를 내는 신묘(神妙)한 공연을 펼쳤다. 공연 직후 만난 김태현은 "아리랑 노래 한곡을 전 지방에서 달리 부르는 우리나라야 말로 소리의 '보고'(寶庫)"라면서 국악 예찬론을 펼쳤다. 이날 그는 CJ 튠업 재즈 스테이지에서 첫 데뷔공연 '비상'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지난 11일 서울 CJ아지트 대학로에서 만난 '드러머' 김태현은 "재즈 속에서 국악이 새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진제공=CJ문화재단>
김태현은 이미 '드럼신동'으로 유명하다. 2015년 15살이 되던 해에 최연소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 동시 합격했다. 버클리 음대 최연소 졸업자(만 18세)라는 타이틀도 따냈다. 올해 20살인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대학 중 하나인 뉴 잉글랜드 음악원(New England Conservatory)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가장 이질적인 재즈와 국악을 하나로 접목하는 '음악의 연금술'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현은 두 음악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색깔'을 꼽는다. 김태현은 "음악의 천재들이 즐비한 버클리에서 드럼만 잘해서는 도저히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면서 "국악의 리듬과 음의 접목을 선보이고 나서야 그들이 비로소 내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재즈의 대가들이 모여있는 교수진 역시 "남들과 똑같은 음악을 하지 말고, 너의 색깔에 집중하라"고 응원했다. 그후 천재 뮤지션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CJ문화재단이 버클리음대와 협업해 마련한 장학금도 그의 몫이었다.
20살의 김태현은 드럼 스틱을 잡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사진제공=CJ문화재단>
이번 공연에는 재즈의 대가인 캐빈 해리스 버클리 음대 교수(피아노)와 제이슨 팔머 교수(트럼펫)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김태현의 시작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해리스 교수가 지난 2018년 1월 CJ-버클리 뮤직 콘서트에 올라 공연한 것도 인연으로 이어졌다."'드럼 신동이다, 천재다'라고 많이들 말씀하시지만, 저는 천재들에게 사사할 수 있었던 '행운아'에 불과합니다. 처음으로 드럼과 국악의 흥을 깨우쳐 주신 김희현 선생님, 사물놀이의 신명을 전수하신 김덕수 선생님, 외국인이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과 음악의 본 뜻을 일깨우신 캐빈 해리스 교수님까지. 한분 한분의 지혜가 제 몸에 축적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서양의 악기인 드럼의 대가로 한 발을 떼는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의 소리에 천착(穿鑿)한다. 세계 어느 곳의 음악보다 풍요로운 소리임을 깨달아서다. 김태현은 "한예종에서 무악(巫樂) '동해안 별신굿'을 배웠을 때 '8박자', '10박자' 음이 묘하게 조화했다"면서 "생경한 음악이 연출하는 음율에 순식간에 매료됐다"고 했다. 이날 공연에서 그는 '구(舊) 아리랑'과 춘향가 구절인 '사랑가'를 편곡한 곡으로 첫 무대에 섰다.
김태현은 인생의 절반을 '천재'로 살았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버클리 음대에서 마주한 천재들에 둘러쌓여 주눅이 들기도 했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업을 포기할까하는 마음이 일었던 것도 수 차례다. 그럴 때마다 그의 주위에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다. "제 재능 하나만 믿고 도움을 준 삼일미래재단, 영재교육원, CJ 문화재단에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껴요. 저도 어딘가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또 다른 '김태현'을 위한 나눔작업을 할 겁니다." 최근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지만, 그의 시선은 어딘가에서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작은 김태현'을 향한다.
그의 공약(公約)은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부터 완도 지역 소외 청소년들에게 악기 교육을 해주는 '청해진 예술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지금도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완도를 찾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완도에서 사사한 그의 제자가 함께 무대에 올라 의미를 더했다.
드러머이자 '드리머'(몽상가) 김태현은 꿈 꾼다. 방방곡곡 숨은 우리 소리가 서양의 악기 위에서 '소생'(蘇生)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팝 음악에 우리 것을 더해 세계적 음악으로 떠 오른 K팝처럼, 우리의 음율이 재즈를 타고 전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는 날이 올 때까지 드럼 스틱을 놓지 않을 거예요. 그 때 국악은 한국인의 전통음악이 아닌 세계인의 것이겠죠." 김태현은 웃으며 자신했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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